한국의 자본주의가 절뚝거리고 있다. 성장으로 분배까지 해결하던 ‘한강의 기적’은 명백한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다. 일자리가 넘쳐나고 가장 혼자 벌어서 온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던 발전국가의 황금기가 끝난 것이다. 자유경쟁을 덕목으로 삼는 자본주의가 공정하려면 자립할 의지만 있다면 누구라도 일 할 수 있어야 한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도 자유경쟁에의 찬가(讚歌)만 되뇌는 사람이 있다면 ‘한가한 소리꾼’에 불과하다.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복지를 약속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고,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복지확대가 이루어질 것만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복지국가의 확장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명심할 일이 하나 있다. 복지를 늘리더라도 서구의 ‘낡은 복지국가’를 무작정 따라하자는 ‘닥치고 복지’만은 말아야 한다. 복지국가를 통해서 마르크스의 이상향을 꿈꿨던 20세기형 사민주의전략은 종주국 스웨덴에서마저 사망선고를 받은 지 이미 오래다. 아직도 무작정 복지를 찬양한다면 또 하나의 한가한 소리꾼이라 아니할 도리가 없다.
한국의 ‘늙은 자본주의’를 고치는 방편으로 복지를 써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생기를 되찾은 새로운 자본주의는 ‘한국형 복지국가’를 지속케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복지확대가 지향해야할 제1의 목표는 자명해진다. 고용률을 높임으로써 중산층을 복원하는 자본주의의 회춘 전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은 고용이라는 매개물이 있어야 비로소 작동을 시작한다. 고용률을 높이게 되면 복지비는 절감되며 성장이 늘고 세수는 증대된다. 지나친 ‘현금복지’ 때문에 선순환이 깨져버린 남유럽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해서, 고용률을 중심에 둔 ‘서비스복지’로의 방향전환이 시급한 까닭이다.
한국의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낮아도 너무 낮다. 청년고용률은 23.1%에 불과하며, 여성고용률도 53.1%에 머물고 있다. 청년들은 기나긴 취업준비에 시간을 허비하고, 여성들은 육아부담과 고용단절에 하루하루 시달린다. 남성중심의 장시간 근로관행을 당연시하는 것으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노추’(老醜)라고 할 수 있다.
고용률을 70%로 높이고 중산층을 키우려면 5년 동안 238만 개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국정운영의 중심을 성장률에서 고용률로 돌리고 정권핵심이 직접 챙겨도 쉽지 않은 수치들이다. 오래 일하는 남성중심의 관행을 깨서 여성도 일하기 편한 ‘일·가정 양립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생애주기별로 발생하는 육아, 교육, 질병, 은퇴 등 고용을 방해하는 상황들에 대응해서 맞춤형의 복지를 구축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이다. 유연하고 짧은 근로를 선택하더라도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되지 않게끔 하는 것도 만만찮게 중요하다.
지식경제와 첨단산업화의 부산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발생하는 것은 하나의 필요악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시장경제를 통한 ‘100%의 행복’이란 애초에 불가하다. 약자들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의 터전을 닦는 일이 그래서 긴요하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는 것이 후기 복지국가의 숙명이라면, 사회적 기업이나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민간분야 ‘사회벤처’ 지원에도 우선순위를 둬야한다. 청년들의 영혼을 깨워 새로운 대안경제에도 뛰어들게 할 다양성중심의 혁신교육이 중요한 이유이다.
고용과 복지, 복지와 교육, 경제와 복지를 융합해야 가능한 일들이라면, 세금낭비 없는 정책조정이 가능하도록 ‘컨트롤타워’부터 챙겨야 한다. 부처이기주의를 넘어 촘촘한 복지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책임총리가 제 역할을 해야 함도 반드시 기억할 일이다.
5년 단임제에서 개혁드라이브가 가능한 기한이 100여일 정도라고들 한다. 금쪽같은 시간들이 저물어 가는 지금, 지루하게 이어지는 벼랑 끝 정국을 보면 한숨만 늘어난다. 민생정치의 실종상황이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면, 응급처치가 필요한 한국의 자본주의가 회춘불가(回春不可)의 ‘골든타임’을 언제 넘길지 모를 일이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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