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톤을 높인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더니 급기야 쇳소리가 섞이며 갈라졌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세워 허공을 찍어 누르듯 흔들더니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일 만인 지난 4일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보인 모습은 결연하다 못해 무서웠다. 소리공학자로 잘 알려진 배명진 숭실대 교수가 분석해 보니 평소 150㎐ 정도로 중년 남성의 안정된 톤을 유지하던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이날은 250㎐대로 높아졌고 최고 380㎐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흥분을 넘어 극도로 울분에 차 격앙된 상태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걸 알리는 게 이날 담화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면, 표정과 몸짓 등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해 효과를 배가한 성공작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과 야당을 상대로 논리와 진정성을 담아 제 뜻을 밝히고 도움을 호소할 작정이었다면, 눈과 귀를 놀라게 하고 가슴까지 서늘하게 만든 실패작임에 틀림없다.
대통령이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내 화를 자초한 전례가 없지 않다. 취임 석 달 만에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고 투덜댔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우리도 국민 노릇 못 해먹겠다”는 대거리라도 가능했다면, 박 대통령의 모습은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방에 틀어박혀 문까지 걸어 잠근 고집불통 가장을 떠올리게 한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최고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름 끼친다”는 말이 나왔을까.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노 전 대통령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쏘아붙인 일 따위를 끄집어 내 공격하는 건 부질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못하기로는 지금의 야당도 오십보백보다. 삼고초려 해 모셔온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장관 후보자가 갑작스레 사퇴하자 억장이 무너져 자제력을 잃었을 수도 있다. 익히 알고 있듯 소통에 서툰 그가 통치든 정치든 대통령직에 걸맞은 안정된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접어주고 이해하려 해도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박 대통령이 “저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고, 그래서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역설한 그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공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수위원회 원안대로 미래부를 만든다고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의 융합에 기반한 ICT산업 육성’이 단박에 이뤄지는 것도, ICT산업을 육성한다고 ‘경제부흥과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물론 인수위와 정부, 여당 관계자 누구도 이 엄청난 과제를 도대체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것인지, 다시 말해 미래부가 그려갈 ‘미래’의 밑그림에 대해 대충이라도 알아듣게 설명한 일이 단 한번도 없다.
ICT산업이니, 신성장 동력이니 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창조한 ‘신천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의구심은 더 커진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이 미디어관련법 날치기 통과까지 감행하며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선정할 때도 비슷한 수사(修辭)가 동원됐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생산유발효과 2조9,000억원, 취업유발효과 2만1,400명’이란 장밋빛 전망이 분칠에 불과했음이 곧 드러났다. 종편은 지상파에 가까운 황금채널 배정 등 온갖 특혜를 받고 출범했지만,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은커녕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경영난에 시달리며 질 나쁜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보수 논객으로 불리는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에서 “판이 깨질 위험을 알고도 ‘옳다고 믿는 바’에 집착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고 썼다. ‘옳다고 믿는 바’의 합당한 근거조차 밝히지 못한 채 계속 집착만 한다면? 아찔하다. 박 대통령은 7일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정치 지도자들 모두가 본연의 소임이 무엇인지 스스로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말인즉슨 옳은데,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할 말이다.
이희정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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