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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파리채와 효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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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파리채와 효자손

입력
2013.03.0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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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됐다. 각급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렸고, 한 학년씩 올라간 아이들은 꿈과 희망에 부푼 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3 교실의 팽팽한 긴장감은 학기 초부터 점차 더 높아져 가는 중이다. 한두 달 지나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긴장도 스르르 풀리고 공부에 지쳐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게 보통이지만.

어떤 대학교수는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오는 이맘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대학 1학년을 프레시맨이라고 하지만, 그 말 그대로 학기 초에는 새로 피어나는 꽃과 함께 신선하고 상큼한 분위기가 캠퍼스를 감싼다.

내가 아는 사람의 쌍둥이 딸도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들은 손녀를 보는 나이에 ‘학부모 입문’을 했으니 어느 세월에 아이들 길러 공부 다 가르치고 언제 결혼을 시킬까 싶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괜히 더 걱정스럽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신체 발달이 빨라 기르고 가르치기가 참 힘들다. 어린 나이에 아는 게 많고 개성도 강해 간섭하지 말라며 부모 말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다 지친 부모는 학교에 들어가면 선생님께 좀 겁을 먹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조금 지나 익숙해지면 선생님도 우습게 아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게다가 같은 나이라도 남자애들보다 여자애들은 훨씬 조숙하다. 남자애들을 갖고 노는 경우도 많다. 옷이나 머리 문제로 엄마에게 1대 1로, 여성 대 여성으로 맞서 싸우는 아이들까지 있다. 세상이 하도 험해서 아이들이 무슨 일이나 당하지 않을까 늘 조바심치고, 등?하굣길의 교통 등 안전이 걱정스러워 이것저것 챙기는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이 알려면 시간이 걸린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매로 가르치곤 했다.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한 부모는 주먹이나 발로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지만, 체벌과 구타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 아니 신체 발달은 빠른데 마음은 여리고 약해 잘못 때렸다가는 아이를 잃기 쉽다. 가출을 하거나 아파트에서 냅다 뛰어내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제대로 아이를 혼내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다.

남편을 여읜 뒤 식당 일을 하며 혼자 남매를 기르는 A씨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불량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여중생 딸 때문에 늘 속이 상해 있었다. 딸은 담배도 피웠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고 뻣대기만 해 A씨는 혼자 울기도 많이 했다.

어느 날 딸과 말다툼 끝에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된 A씨는 파리채로 아이를 마구 때렸다. 딸내미가 울면서 대들었다. “내가 파리야, 파리? 왜 사람을 파리채로 때려?” A씨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야, 이년아, 니가 그럼 효자손으로 맞으면 효자 되니? 효자 돼?”

모녀의 공방은 이 우스운 문답으로 일단 마무리됐지만, 그날 이후 딸이 달라졌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정말이지 효자손으로 효자를 만들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때린다고 해서 아이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이들 기르고 가르치는 어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기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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