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가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을 어기고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후보지에 임직원 명의로 공장부지용 땅을 매입하면서 사용한 자금 67억여 원의 실체를 놓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명의신탁 매입을 주도한 GS칼텍스 김모 전무가 "땅을 매입하는 데 회사 가수금을 썼다"고 한 경찰 진술에 대해 GS칼텍스 측이 뒤늦게 "회계상 가수금은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6일 여수경찰서 등에 따르면 GS칼텍스 여수공장 임직원 11명에게 명의신탁 방식으로 땅을 매입하도록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전무는 경찰 조사에서 땅 매입자금 67억여원의 출처에 대해 "회사 임직원이 임의로 쓸 수 있는 가수금을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가수금(假受金)이란 현금 수입은 있지만 거래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아직 거래관계가 종료되지 않은 경우 일시적으로 현금의 수입을 처리하는 계정항목을 말한다.
그러나 대기업의 자금 집행 시스템에 비춰보면 김 전무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 기업체들은 가수금이라 하더라도 67억원을 인출하는데 최고 책임자의 결재가 없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GS칼텍스 대표이사 등의 지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묵인 없이는 자금 인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경우 GS칼텍스 대표이사가 땅 매입과정에서 불법 명의신탁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단서가 돼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 전무 등이 명의신탁 등과 관련한 혐의를 뒤집어써서 '윗선'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경찰은 "GS칼텍스 부동산TF팀을 이끈 김 전무가 모든 일을 지시했다"는 임직원들의 진술만 믿고 여수시가 고발한 GS칼텍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도 밟지 않고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1월 25일 경찰이 사건을 송치한 후 재벌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이 일자 GS칼텍스 측은 "가수금은 없다"고 김 전무 등의 진술내용을 부인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GS칼텍스의 한 고위 간부는 6일 "(회사에)가수금(계정)은 없다. 67억여원은 회사의 부동산 매입자금으로 정상 책정된 돈"이라고 말했다. 67억여원이 최고 책임자의 결재를 거쳐 집행됐다는 뜻이다. 이는 김 전무의 진술과 달리 회사의 최고 책임자가 자금결재 과정에서 불법 명의신탁을 통한 땅 매입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GS칼텍스 측이 최고 책임자의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가수금의 존재를 부인한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송치 받은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가수금의 출처를 밝히는 과정에서 오너의 비자금이라는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실제 한 회계사는 "회계상 가수금 계정은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법인의 대표나 임원 등이 회사 자금 부족으로 자신의 돈을 회사 업무에 사용할 때 흔히 처리하는 방식"이라며 "그러나 고의적 매출 누락이나 자금 출처를 숨긴 채 입출금을 반복해 세금 포탈을 시도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경우에도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런 정황을 들어 김 전무의 경찰 진술과 GS칼텍스 측의 해명에 신뢰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판단, 67억원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에 나설 계획이어서 실제 비자금 존재여부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검찰 관계자는 "GS칼텍스가 불법 명의신탁으로 땅을 사면서 쓴 67억여원이 가수금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부동산 매입자금 계정에서 나온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계좌추적 등 돈의 흐름을 파악해 그 실체를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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