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는 곳, 밥과 간식을 먹는 곳, 한참 참았다 가는 고속도로 휴게실 같은 곳, 자주 가면 월급이 깎이는 곳….
이곳은 어디일까. 여성노동자들이 말하는 '화장실'이다. 늘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요양보호사 오세영(64)씨는 관리자에게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따로 쉴 공간이 없는 청소노동자 박경순(63)씨는 화장실에서 밥과 간식을 먹을 때가 많다.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이미숙(45)씨는 "백화점 1층에는 화장실이 없어 계속 참다가 휴게소 화장실처럼 얼른 갔다 온다"고 했고, 다산콜센터 상담원 심명숙(37)씨는 "화장실에 자주 가면 평가점수가 깎여 월급이 깎일 수 있어 참는다"고 했다. 보육교사 김호연(38)씨는 "교사 한 명이 아이들을 23명씩 돌보는데 잠깐 자리를 비웠다 사고가 날까 싶어 늘 소변을 참다 보니 방광염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8일 105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일보와 민주노총은 5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키워드 토크 '여성노동이 아프다'행사를 열었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 30여명이 키워드를 통해 자신들의 근로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키워드는 화장실, 노동시간, 고객, 아이, 관리자, 여성 대통령 6가지.
24시간 교대로 일하는 오세영씨에게 근무시간이란 '잠잘 때도 귀를 열어둬야 하는 시간'이다. 사용자 측은 식사와 수면을 위해 10시간을 준다고 주장하지만 환자에게 밥을 떠먹여줘야 하고 자다가도 환자가 부르면 일어나 도와줘야 한다. 이들에게 아이는 '옆집 아이'(이미숙씨)거나 '철인경기의 한 종목'(김호연씨)이었다. 얼굴을 자주 못 볼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일 가정 양립이 철인경기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열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격차는 39%로 OECD 국가 중 가장 컸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으면 여성은 61만원을 받는다는 뜻으로 OECD 평균(15%)의 2.6배나 된다. 이 임금격차 폭은 좁혀지지 않은 채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소규모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보니 고용이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차별과 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도 여전하다.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은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심명숙씨는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사법연수원 여성 연수생 비율이 40%를 기록했지만 여성 개개인의 노력의 결과물인 것 같다"며 "이제 사회적으로 여성 노동이 남성 노동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게 여성 대통령이 애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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