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두달여 동안 연금복권 위조사건을 수사하던 충북 청주흥덕경찰서 지능1팀 경찰관들은 지난달 말 범인을 검거한 뒤 깜짝 놀랐다. 위조범이 TV에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하며 유명세를 탔던 98세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고령의 노인이 복권의 숫자를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한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경찰은 노인의 과거를 캐기 시작했다. 놀라운 '신분세탁' 능력으로 전 국민을 감쪽같이 속인 위조범 안모(60ㆍ전과 9범)씨가 가면을 벗는 순간이었다.
안씨가 90대 노인 행세를 시작한 것은 실제 나이 50대 초반이던 2005년. 유가증권 위조죄로 징역 2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그는 무료급식을 하던 청주의 한 교회 목사에게 접근, 고아 행세를 하며 도움을 청했다.
나이 90살이 넘도록 주민증이 없다는 호소에 목사는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아 법원에서 안씨의 성과 본을 만들어줬다. 새로운 이름이 생기자 안씨는 2009년 4월 청주 흥덕구청에서 주민증을 발급받았다. 이 과정에서 안씨는 신분이 탄로날 것을 우려해 열 손가락 끝에 강력 접착제를 수 차례 바르는 수법으로 지문을 손상시켰다.
서류상으로 신분을 완전히 세탁한 안씨는 이때부터 올 1월까지 기초노령연금, 장수수당으로 매달 48만원씩 46개월 동안 총 2,285만원을 챙겼다. 안씨는 지난해 10월 KBS전국노래자랑 '충북 괴산군'편에 출연, 춤을 추며 트롯 가요를 불러 인기상을 수상했고, 두 달 뒤 연말 결선에도 나가 인기상을 한 번 더 받았다.
프로그램 녹화 당시 사회자인 송해씨가 안씨에게 건강 비결을 묻자 "욕심 안 부리고 남을 배려하며 산 덕분"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안씨는 지난 1월 TV교양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장수 비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안씨의 범행은 그가 위조한 복권이 지난해 12월 청주시내 복권 판매점에서 발견되면서 들통났다. 경찰조사 결과 안씨는 신분 확인 없이 당첨금을 수령할 수 있는 당첨금액 5만원 미만의 복권을 위조해 최근 5년 동안 총 47만원을 타냈다. 그는 복권을 물에 불려 숫자 뒷면을 긁어낸 뒤 가위와 풀을 이용해 당첨번호를 오려 붙이는 수법을 썼다.
경찰은 "안씨가 얼굴에 주름이 많고 이가 거의 없는 외모를 이용해 고령자 행세를 했다"며 "20년 이상 교도소 생활을 한 탓에 주변에서 그를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법원을 속여 허위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고 복권을 위조한 혐의 등(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5일 안씨를 구속했다.
청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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