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동안 부가가치세 5만원 부과됐다. 사무실에 출근해도 일이 없어 아침마다 눈을 뜨기 싫을 정도였다."
법률시장 개방, 로스쿨생 배출이라는 변호사업계의 지각변동에도 대형 로펌들은 흔들림 없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맡을 사건이 없어 고사 직전의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개인변호사 여러 명이 사무실만 공유하고 채산은 독립적으로 하는 중소규모 로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개업 5년차인 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는 지난해 1~3월 3개월간 부과된 부가가치세가 고작 5만원이었다. 법률상담 1건을 한 것 이외에는 3개월 내내 사건을 하나도 맡지 못해 수입이 5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매출은 없는데 고정비용만 자꾸 나갔다. 사무실 임대료 월 200만원, 사무직원 월급 180만원에 관리비까지 합치면 손님접대비를 최소화해도 매달 400만원 가까이 지출됐다. 그는 "기름값과 보험료도 부담이 돼 타고 다니던 그랜저 차량을 내다 팔았다"며 "사무실이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직원이 매일 구인구직광고만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민망해서 꾸중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 여성 변호사는 6개월 넘게 사건이 들어오지 않아 결국 사무실을 정리하고 대형마트에서 캐시어(현금출납원)로 일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비용절감을 위해 변호사 2, 3명이 비서 1명을 공동으로 쓰는 사무실이 늘어났다. 비서를 쓰지 않는 사무실도 있는데 이는 변호사가 문서 수발, 사무실 청소, 복사기 수리까지 직접 다 하겠다는 것이다.
아예 대형 로펌의 영향력이 덜한 지방으로 옮겨가는 변호사들도 있다. 이른바 '서초동 엑소더스' 현상이다. 올해에만 벌써 변호사 16명이 서초동을 떠나 인천과 경기 수원시 등지에 새로 사무실을 열었다. 한 변호사는 "지방도 전관들이 꽉 잡고 있어 사건 수임이 쉽지 않지만 대형 로펌이 장악한 서초동보다는 나을 거란 기대감 때문에 지방으로 발걸음을 돌린 변호사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모여 '반값 수임료'를 내걸고 영업을 시작했고, 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법무사 일을 변호사들이 수임하는 일이 잦아져 법무사들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안정적 수입을 위해 기업 법무팀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취업하는 변호사들도 늘고 있다. 법원에 소속돼 국선 변호만 담당하는 국선전담변호사 경쟁률도 지난해 9.46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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