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없었다.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 대표팀이 본선 1라운드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안았다. 대만, 네덜란드와 함께 2승1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득실에서 밀려 굴욕을 맛봤다. 참사다.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강의 야구 강국을 자부하던 한국은 한 수 아래로 평가 받던 네덜란드에게 첫 게임에서 무너지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한국은 5일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에서 열린 대회 본선 1라운드 3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했다. 7회까지 0-2로 뒤지다 8회말 3번 이승엽과 4번 이대호의 연속 안타로 1점을 뽑고, 7번 강정호의 2점 홈런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본선 2라운드가 열리는 일본행 티켓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5~6점 차로 이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대역전 드라마는 없었다.
이날 한국은 6점 차 이상으로 승리했다면 기적적으로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5점 차 승리일 경우엔 4자책점을 얻으면 대만을 제치고 일본으로 갈 수 있었다. 자책점이란 투수가 허용한 실점에서 수비진의 실책이나 패스트볼에 의해 내준 점수를 제외한 것이다. 즉, 투수가 야수 실책으로 1실점을 했다면 비자책, 상대 타자의 안타나 홈런으로 1실점을 했다면 1실점이다. 하지만 이처럼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한국은 처음부터 쩔쩔매다 1점 차로 승리하는 데 그쳤다.
이로써 한국은 WBC 대회 사상 처음으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의 신화는 역사 속으로 간직한 채 네덜란드와 대만 보다 못한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공격과 수비, 투수력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었고 2006년 '도하 참사(아시안게임 동메달)' 이후 7년 만에 '대만 쇼크'를 겪었다.
선발 장원준(롯데)은 비교적 잘 던졌다. 한국의 운명을 짊어지고 3.2이닝 동안 6안타 2실점으로 버텼다. 하지만 야수들이 도와주지 못했다.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며 선취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역시 타선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응집력이 부족했다. 다득점의 부담 탓에 배트는 무겁게 돌아갔다.
한국은 이날 1회부터 본 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1사 후 볼넷으로 출루한 2번 정근우(SK)는 2사 후 4번 이대호(오릭스)의 타석 때 도루를 시도했다. 완벽한 타이밍에서 스타트를 끊었고 상대 포수는 다급한 나머지 2루에 악송구 했다. 하지만 공이 뒤로 빠진 것을 보고 3루까지 내달린 정근우는 아웃됐다. 2루 베이스를 돌면서 분명 다리가 꼬여 균형을 잃었는데도 무리하게 3루를 노린 탓이었다. 결국 4번 이대호가 3볼-1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타격도 하지 못한 채 한국은 선취점 기회를 날려버렸다.
3회 실책 장면은 사실상 승부처였다. 선발 장원준은 선두 타자 1번 양다이강에게 유격수 방면 내야 안타를 맞았지만 2, 3번을 범타로 처리했다. 그러나 4번 린즈셩의 바가지 안타 때 중견수 전준우(롯데)가 공을 더듬으면서 선취점을 내줬다. 전준우는 불규칙바운드를 한번에 포구하지 못하자 우왕좌왕 했고, 중계 플레이마저 소홀하게 하면서 1루 주자의 득점을 허용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지난해 프로 최초로 700만 관중을 동원한 최고의 인기 종목이다. 두 차례의 WBC 호성적과 2009 베이징 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남다른 자부심도 가졌다. 하지만 뒤에서 조용히 절치부심하던 대만이 대회 내내 완벽한 수비와 팀 배팅을 보인 반면 한국은 답답한 경기력으로 일관했다.
야구공은 언제나 둥근 법이다. 그 말은 곧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타이중(대만)=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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