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네스코 부조리극 '수업' 서 전율연기 펼치는 이승헌압도적인 존재감…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 보는 듯
이 연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서울 혜화동의 게릴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오네스코의 '수업'은 현대 부조리극의 대명사답게 황당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말이 안 되는 횡설수설이 진지하고 현란하게 이어지다가 점점 미쳐서 강간과 살인까지 벌어지는 곤혹스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답은 없다. 이오네스코는 '반(反)연극'을 선언했다. "나는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제시할 뿐이다." 해석은 관객 몫이라는 뜻이겠으나, 블랙 코미디보다 신랄하고 무거운 이 작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꼼짝 못하고 말려드는 것은 주인공 배우 이승헌(41)이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 때문이다. 공연을 본 한 관객이 개인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무대에서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졌다."
인간들 사이에 진정한 소통은 가능한지 묻는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는 존재감은 더없이 강렬하다. 종잡을 수 없는 대사를 쉴새 없이 쏟아 내면서 광기에 사로잡혀 날뛰는 늙은 교수 역이다. 박사학위를 따려는 18세 여학생이 수업을 들으러 집으로 찾아온다. 노교수는 정중하게 학생을 맞지만, 수업은 언어도단과 오리무중 장광설의 연속이다. 서로 자기 말만 하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끔찍한 분노와 공포로 부풀어 오르고 교수는 끝내 여학생을 죽인다.
살인 장면에서 노교수는 아랫도리를 벗고 와이셔츠만 입은 채 춤을 추고 책상 위로 뛰어 올라 몸부림을 친다. 90석밖에 안 되는 작은 극장에서 남자 배우의 반라 연기를 코 앞에서 지켜보는 것이 편치는 않다. 게다가 살인 무기는 성기다. 칼집에서 칼을 뽑듯 성기에서 무언가 뽑아내는 몸짓을 하더니 여학생을 찌른다. 이건 연출가 이윤택의 해석이다. 남근사상이야말로 남성이 지닌 근원적 폭력임을 부각시킨 연출일 것이다. 보기에 거북하고 충격적이지만, 설득력이 있다. 피도 식칼도 등장하지 않지만, 더 효과적인 장치다.
이오네스코의 '수업'은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다. 연희단거리패는 이 작품을 2002년 처음 공연했다. 이후 2009년 게릴라극장의 부조리극 페스티벌에 올렸고 그해 일본 타이니알리스 페스티벌, 2012년 이오네스코의 나라인 루마니아 초청공연도 했다. 11년째 이 역을 하고 있는 그는 루마니아에서 관객 전원 기립박수를 받았다. 당시 루마니아 배우가 찾아와 영어로 한 인사는 최고의 찬사다. "생큐 포 더 레슨, 생큐 포 더 액팅 레슨."(수업에 감사 드린다, 당신의 연기 수업에 감사 드린다)
그는 연희단거리패의 간판배우다. 연희단거리패의 배우 훈련 과정인 우리극연구소 4기 출신이다. 대학 졸업 이듬해인 97년 우리극연구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연희단거리패가 밀양연극촌에 둥지를 틀고 있어 주로 거기서 활동하고 서울에는 공연을 할 때만 올라온다. 이번 작품이 끝나면 바로 4월부터 연말까지 신작 공연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
그는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가서도 곱씹어 볼 것을 줬다는 말을 들을 때 배우로서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의 '수업'은 그런 작품이다. "연기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것 같다. 연극도 그렇지만, 모든 예술은 처음에는 자기 만족을 위해 시작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아닌 너를 위해 하는 것"이라며 "지금 이 시대에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차분한 말투와 고요한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 무대에서 폭발하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깊숙이 감춘 채, 신중하게. 광분한 노교수는 어디로 갔나.
글ㆍ사진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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