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자체를 죄악시정치권, 중독 피해만 부각 유례없는 셧다운제 이어 모바일 규제 논의까지규제 실효성은 없고 부작용부모·지인 주민번호 도용 심야게임 겨우 0.3% 감소 업계도 성인게임만 양산게임사 매출 곤두박질해외 실적에 그나마 유지… 규제시스템 구축 비용 등 중소업체들은 더 타격
게임업계가 질식을 호소하고 있다. 폭력과 사행, 중독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온갖 규제가 숨통을 조여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이 사회악의 얼굴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올리는 어엿한 산업이기도 하다. 고사위기에 처한 게임업계의 현 주소와 함께 규제와 지원의 공존방안을 모색해본다.
"올해 지스타 불참을 선언합니다."
지난 1월11일 국내 대표 게임업체 위메이드의 남궁 훈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에 대한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지스타는 매년 부산에서 개최되는 게임업계 최대잔치다.
이유는 당시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인터넷게임중독예방법(일명 손인춘법)때문. 이 법은 ▦청소년의 심야접속을 막는 '셧다운제' 시간 연장 ▦매출의 최대 5%에 해당하는 중독치유부담금 부과 등 현재보다 훨씬 더 높은 수위의 규제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발의되자 업계에선 반발이 확산됐고, 결국 한국게인산업협회도 지스타 불참을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을 무조건 사회악으로 보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사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란 말 인가. 이런 분위기에서 전시회가 무슨 의미가 있나"고 반문했다.
사실 게임에 대한 규제는 점점 더 도를 더해가고 있다. 게임중독에 의한 청소년 피해 등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이 규제를 하나씩 늘려가는 형국이다. 2년 전 시행된 셧 댜운제도 사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였지만, 워낙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에 대한 비난여론이 커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젠 셧 다운제 적용시간을 더 늘리고, 심지어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아예 2시간으로 묶어 버리는 '쿨링 오프제'까지 거론될 정도다.
최근엔 모바일 게임에 대한 규제논의가 추가됐다. PC나 온라인게임이 퇴조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게임이 확산되자, 일각에선 "모바일 게임도 셧 다운제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획일적 규제의 실효성이 별로 높지 않다는 점. 여성가족부의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셧 다운제 실시 이후 심야에 게임을 하는 청소년 수는 겨우 0.3% 줄어든 반면, 40%가량은 부모 혹은 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양산되고 있는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사들은 셧 다운제 이후 청소년 게임 대신 성인용 게임을 주로 내놓고 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은 성인용 게임에 노출될 위험이 더 커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게임업체들의 실적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업계 1위 넥슨은 2년 연속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지만, 4분기만 놓고 보면 국내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12%나 급감했다. 넥슨 관계자는 "해외시장 실적이 그나마 살려준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이 주력인 CJ E&M 넷마블의 경우 총매출이 전년 대비 18%나 감소했다. 엔씨소프트와 네오위즈는 구조조정도 겪었다. 물론 경기침체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과잉규제에 따른 후유증이란 게 일반적 시각이다.
중소형 게임사들의 피해는 더 크다. 최근엔 규제 외에 정부의 어설픈 정책추진으로 이중삼중의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주민등록번호 수집금지 조치가 대표적 사례. 2011년 주요 포털 및 게임사가 해킹을 당해 수천만명 가입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 방지대책으로 도입된 것인데, 방송통신위원회가 주민번호를 대체할 본인확인수단인 '휴대폰인증시스템'을 작년 12월에서야 확정하는 바람에 중소게임사들은 수천만원대의 시스템 구축비용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시장의 80%가 직원 30명 이하의 중소게임사인 만큼, 이미 불황으로 휘청거리던 기업들은 이번 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본연의 게임콘텐츠 생산 보다 본인확인 등 각종 규제 및 시스템 구축에 비용이 더 들면 자연히 창작은 위축되게 마련"이라며 "게임의 부작용을 고치는 건 좋지만 게임 자체를 죄악시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시선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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