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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전의 인간적인 모습 가슴에 와닿아 오스카 3번째 거머쥔 루이스의 연기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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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전의 인간적인 모습 가슴에 와닿아 오스카 3번째 거머쥔 루이스의 연기 '백미'

입력
2013.03.0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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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정부 부처들이 몰려있는 내셔널몰(National Mall)을 둘러보다 문득'제국'이 떠올랐다. 내셔널몰 주변을 가득 메운 고풍스럽고 거대한 석조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전투에서 승리한 황제가 장엄한 개선 퍼레이드를 펼쳤을 법한 그림이 오버랩 됐다. 그 정점에 파르테논 신전을 그대로 본 딴 링컨기념관이 있다. 그 안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은 높은 의자에 앉아 미국의 영광을 한 눈에 내려다 보고 있다. 어쩌면 그가 제국의 신이 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링컨'은 바로 미국인이 가장 위대하다고 꼽는 대통령 링컨의 생애 가장 강렬했던 마지막 4개월을 다뤘다.

남북전쟁의 막바지, 링컨은 고민에 빠진다. 링컨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 노예제 폐지 역시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판단, 법적으로 안전망을 갖추기 위해 헌법 13조 수정안을 서둘러 통과시키려 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 구도에서 수정안 통과를 위해선 20표를 더 얻어내야 한다. 이때 남부군에서 평화 제의가 들어온다. 지금 당장의 참혹함을 끝낼 전쟁의 종결이 먼저냐, 인류의 미래를 위한 노예제도의 완벽한 폐지가 먼저냐를 놓고 링컨은 결단해야 한다.

링컨은 옛날 이야기로 말문을 여는 등 부드러움의 힘으로 상대를 설득해낸다. 고뇌의 선택으로 번민의 밤을 보낸 그가 '동일한 것과 같은 것들은 모두 서로 같다'는 2,000년 전의 유클리드 공리를 들어 평등과 노예폐지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논하는 장면은 특히나 감동적이다.

영화의 정점은 의회에서의 논쟁이다. 수정안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간의 설전은 총 대신 언어라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이다. 본격 표결을 둘러싸고 코믹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대결이 벌어진다. 공화당 실수를 노리는 민주당 의원의 노골적인 공격에, "인종 평등과는 상관없다.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받아 치는 공화당 급진파 좌장 스티븐스(토미 리 존스)의 역공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링컨'속 링컨은 연회를 앞두고 직접 부츠를 닦고, 흑인 말단 병사와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인간적인 대통령이다. 그는 또 우울증에 걸린 아내의 막무가내 투정을 받아내야 하는 남편이고, 입대하겠다는 큰 아들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렇게 신전의 하얀 옥좌에 올라앉은 링컨을 고뇌하고 때론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땅에 내려오게 한다. 위대한 링컨과 함께 감동적인 것은 링컨이 지닌 고뇌를 이토록 입체적으로 그려낸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력이다. '링컨'을 포함해 세 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14일 개봉. 12세 이상.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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