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의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경찰이 소환절차도 밟지 않고 수사를 미루다가 결국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드러나 '재벌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전남 여수경찰서는 여수시가 GS칼텍스와 임직원 등을 상대로 낸 부동산실명법 위반 고소 사건과 관련해 임직원 11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또 여수국가산업단지 후보지에 땅을 매입하면서 이들 임직원들에게 명의를 빌려주도록 부추긴 GS칼텍스 김모 상무 등 간부 2명과 전 직원 1명에 대해서는 각각 교사와 교사방조 혐의를 적용,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상무 등은 GS칼텍스가 2011년 12월26일부터 지난해 6월20일까지 여수국가산단 적량지구 내 사유지 49필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임직원 11명에게 명의신탁 방식으로 땅을 사들여 회사 명의로 이전해 주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김 상무 등의 부탁을 받은 임직원들은 적량지구 내 사유지 25필지 5만2,919㎡를 자신들의 명의로 순차적으로 사들인 뒤 이를 다시 회사 명의로 이전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여수시는 지난해 10월 GS칼텍스의 이 같은 부동산실명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GS칼텍스에 과징금 3,351만여 원을 부과한 데 이어 명의를 빌려달라고 한 GS칼텍스와 명의를 빌려준 임직원 11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현행 부동산실명법상 명의신탁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명의수탁자와 교사, 교사방조범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명의신탁자인 GS칼텍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는 물론 서면조사도 하지 않고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GS칼텍스 부동산TF팀을 이끈 김 상무가 모든 일을 지시했다"는 피고발인들의 진술만 믿고 '윗선'에 대한 수사는 덮었다. 경찰은 특히 GS칼텍스가 임직원 명의로 땅을 사들인 데 쓴 돈 67억여원이 회사 비자금이라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자금 출처와 돈의 성격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 "회사 임직원이 임의로 쓸 수 있는 가수금을 사용했다"는 회사 측 진술을 받고도 실제 가수금이라는 회사 내 예산항목 존재하는지, 가수금이 존재한다면 임직원이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등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고 수사를 끝냈다. 아무리 가수금이라 하더라도 수십억원의 돈이 빠져나갔는데 최고 책임자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회사 조직 내 속성상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데도 그냥 지나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이 대기업 계좌를 추적할 여력이 없었던 데다 지난해 말 발생한 여수 금고털이 사건 등으로 조직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수사 의지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었다"고 사실상 부실 수사를 시인했다.
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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