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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박함과 사람의 향기 깃든 '감응의건축' 새삼 그리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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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박함과 사람의 향기 깃든 '감응의건축' 새삼 그리워지다

입력
2013.03.0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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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도서관, 무주군 안성면 주민 목욕탕, 진주동명중고등학교…. 정기용(1945~2011)의 건축은 소박하면서 정겹다. 화려한 외관보다 공간과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한 건축가. 그의 작품에는 "어떤 길목에서 할아버지가 보던 풍경을 똑같이 아버지가 바라보았고, 나 또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작은 오솔길조차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건축 정신이 담겨 있다.

건축가 정기용을 회고하는 '그림일기: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이 9월 22일까지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제5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정기용이 작고 직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2만여 점의 자료 중 2,000여 점을 선별해 7가지 주제로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정다영 학예사는 "생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정기용 건축전'이 그의 건축을 일반에 알리는데 초점을 두었다면 이번 전시는 건축가 정기용이란 인물에 중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정기용은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뒤 197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86년 귀국하기까지 실내건축, 건축, 도시계획을 차례로 공부하며 실무의 기틀을 쌓았다. 1부 '건축의 뿌리'는 정기용의 청년시절을 연구노트와 소장도서, 논문으로 보여준다. 당시 사상적 토양이 된 앙리 르페브르의 연구도서를 비롯해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 김동춘의 등 다양한 도서는 정기용의 폭넓은 지식과 관심사를 짐작하게 한다. 영화감독 정재은의 인터뷰 영상은 이 자료들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도우미역할을 한다.

1985년 기용건축연구소를 세우고 설계한 초기작부터 김해 기적의 도서관(연도 미상), 부산 민주공원(1996), 제주 4ㆍ3평화공원(연도미상) 등 공공건축물을 설계한 단면도와 드로잉, 모형을 '거주의 의미' '성장의 공간' '추모의 풍경' 등의 주제로 묶어 소개한다.

"좋은 집이란 거주하는 사람의 삶의 흔적이 서서히 누적되어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집이다." "단순한 회상이나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창조적 힘이 가해질 때 유적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동시대의 예술적 가치로 환원될 것이다." 각종 매체에 기고한 칼럼과 메모는 이 건축가의 고민과 애정을 보여준다. 5부 '도시와 건축'에서는 상업빌딩 건축 사례를 소개한다. '동숭동 무애빌딩'(1994) '코리아나 아트센터'(2001) 등의 설계도와 드로잉을 통해 생전 "도시 속 세워진 한 건물 안에는 도시 전체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던 그의 정신이 실제 건축으로 이어진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압권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에 걸쳐 진행한 무주프로젝트의 내용을 담은 6부 '농촌과 건축'이다. 마을회관, 면사무소, 공설운동장, 군청, 재래시장 등 무주에서 "1년에 1억 원씩 손해를 보면서"(김병옥 기용건축사무소장) 진행한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30여개의 프로젝트를 설계도와 모형으로 소개한다. 전시장 끝에 마련된 '정기용의 렉처 룸'에서는 정기용의 생전 강연 영상을 상영한다.

"건축가로서 내가 한 일은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 '감응의 건축'으로 불리는 정기용의 건축철학과 엄청난 분량의 설계도, 연구노트는 관람객에게 '우리에게도 이런 건축가가 있었다'는 자부심과 숙연함을 동시에 전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관에 건축 전문 공간을 신설한 뒤 여는 첫 전시다. 이 전시가 끝나면 10월에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ㆍ1937~2011)의 회고전이 열린다. (02)2188-6000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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