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3일 방영한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특집'은 한국 코미디 역사에 바치는 오마주였다. '코미디는 흐른다'는 부제가 붙은 이날 방송에는 최양락 이봉원 장두석 김미화 김현숙 등이 출연해 한국코미디의 흐름을 보여줬다. 이 작업의 중심에는 개콘 메인작가인 이상덕(45)씨가 있다. 한국 코미디가 콩트 형식에서 공개 콘서트 포맷으로 바뀌기까지 두루 체험한 그를 만나 코미디의 어제와 오늘, '국민보약'으로 일컬어지는 개콘의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1992년 KBS 제4기 쇼ㆍ코미디 작가로 출발하여 '유머일번지''한바탕 웃음으로''슈퍼선데이'등 간판급 코미디프로 작가를 거친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코미디 20년은 급변의 역사 그 자체였다. "20년 전만 해도 코미디 대사에 '방귀'라는 표현을 쓰거나 키스 장면을 넣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노조가 있는 직업도 항의가 들어올 수 있으니 소재로 삼을 수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맨 바보나 도둑, 아니면 학생 이야기 밖에 다룰 게 없었죠."
하지만 그는 1999년 '개그콘서트'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됐을 때 작가 제안을 거절했다. "코미디 프로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밀려 속속 폐지되는 '흑역사'가 계속되던 시절인데다 소수 인원으로 60분짜리 공개 코미디를 제작하는 건 무리로 보였어요. 2000년에도 전유성 김미화 선배님이 밤을 새서 회의를 하는 걸 보며 '역시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죠."
그럼에도 2006년 개콘 메인작가로 합류한 그는 7명의 후배 작가들이 구성해오는 코너를 '검사'하고 수정하고 자문을 해왔다. 서수민 CP나 김상미 PD와 더불어 '개콘'의 최종 코너를 결정하는 '웃음의 데스크' 역할을 맡고 있다.
"수요일 '개콘' 녹화를 마치고 나면 웃겼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안 웃긴 게 있고 기대 안 했던 게 크게 터지는 경우도 있어요." 이렇게 그의 손을 거쳐 살아난 코너들은 많다. " '두분 토론' 같은 경우 원래 시사 풍자 코미디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좀 식상했어요. 그래서 남성 우월주의자와 여성 페미니스트간의 토론으로 손을 좀 봤죠. 여기에 '소는 누가 키워'라는 유행어를 만든 박영진과 김영희의 연기력 등이 보태진 거죠."
그는 아직도 '개콘' 최고의 코너로는 '대화가 필요해'코너를 꼽는다. 리허설을 보다가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웃었다고 한다. "웃음에는 페이소스가 있어야 해요. 식탁에 앉아 부모와 아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단절된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이 코너는 지금 봐도 대단해요."
하지만 그 후로 그는 리허설 때 단 한번도 웃은 적이 없다. 덕분에 10년 차 베테랑인 개그맨 김준호나 박성호조차도 '검사'를 받는 과정이 지금까지 떨린다고 고백할 정도다. "속으로는 많이 웃는데 포커페이스처럼 참는 거죠. 제 스스로 즐기다 보면 웃음의 질과 맥락을 고민해야 하는 역할이 흐트러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그에게는 이런 저런 고충이 많다. "축구 심판이 오심을 하듯 저나 제작진도 오심을 할 때가 많거든요. 실패가 분명한 것 같은 데 뜬 코너도 있죠. 제가 웃음의 '신'이나 '판사'는 아니니까요. 사실 제가 낸 아이디어도 수 백 개가 실패하고 몇 개만 살아 남았어요."
높아지는 시청자들의 기대 수준도 큰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 매주 전주보다 더 강도 높은 웃음을 선사해야만 시청자들이 반응을 하거든요. 패턴이 다 읽히니까요."
낚시광에 미혼인 스스로를 일러 '노땅'이라고 표현한 그는 '개콘'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개콘을 만드는 동안 저도 힐링을 얻었습니다. 남을 웃기려 하고 웃다보면 가슴에 맺힌 게 풀어집니다. 시청자게시판에도 부부싸움을 하던 부모님이 개콘을 보며 웃다가 화해했다는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 나름 뿌듯함을 느낍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