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류관순 괴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류관순 괴담

입력
2013.03.03 11:17
0 0

태극기가 삼일째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아파트 건너 동에서. 홀로 외롭게. 저 집 주인은 아침에는 삼일절이라는 걸 기억하고 저녁에는 까먹었나 보다. 덕분에 나는 삼일절의 삼일째, 삼일절의 태극기를 생각하고 있다.

한때는 나도 아버지와 함께 삼일절 아침 꼬박꼬박 태극기를 걸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린 건 학교를 떠돌던 꺼림칙한 소문이었다. "삼일절에 태극기를 안 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 "밤 12시에 유관순이 찾아와 귓속에 속삭인대.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그 나이라 해서 괜히 지어낸 말이란 걸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깨끗이 무시해 버릴 만큼 간이 크지도 않았다. 빛이 잘 들지 않는 복도 게시판에 내내 걸려 있던 유관순의 으스스한 초상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그 굳은 얼굴 앞에서 우리는 온갖 괴담을 나눴다. "유관순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래. 저 사진, 반쪽씩 가리고 봐봐." "밤에는 피눈물을 흘린다던대?" "너무 많이 알면 안 돼. 유관순의 진실 백가지를 다 알면 유관순이 앞에 나타나. 그 눈을 보면 죽는대."

아, 꽃다운 나이에 고문 받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유관순은 어쩌다 무서운 귀신이 되어 지상을 떠돌게 된 걸까. 유관순을 위인과 열사로 받들면서 우리는 오히려 그녀를 외롭게 한 건 아닐까. 아니면 이 괴담들을 통해서야말로 유관순은 엄숙한 애국의 틀에서 걸어 나와 소녀로서의 영혼을 활짝 피운 것이려나.

신해욱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