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 거, 해보지 뭐!'
그렇게 나선 '더치페이 라이프'는 힘들었다. 아니 고통스러웠다. 20대 후반 직장 초년생 남자에게 저 임무는 애당초 가망 없는 것이었을까?
"우리 더치페이 하…지 않을래?"입을 떼는 것부터 두려웠다. 반응도 두려웠고, 인간관계도 걱정스러웠다. 나름 성실히 고군분투했으나 나는 졌다. 이 글은 그 처절했던 더치페이 라이프 실패담이다.
대학 후배 김형모(27)씨가 첫 '희생자'. 저녁 자리에 앉자마자 후배는 취업의 어려움을, 부모님 눈칫밥 먹는 고통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선배랍시고 면접 경험담 등 취업요령까지 주절거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더치페이뿐. 결국 나는 말을 못 꺼냈다. '이건 경우가 달라.'
그 사이 만난 후배는 모두 6명. 나보다 잘 벌고 넉넉한 부모 만난 후배도 있었지만, 어렵사리 비굴하게 더치페이를 제안했을 때의 반응은 언제나 나를 위축시켰다. "(차갑게)제건 제가 내려고 했어요."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에이 왜 그러세요?" "(표정이 굳어지며) 당연히 저도 내야죠." "(얼굴까지 벌개지며) 저, 어려운 거 아시잖아요"
그런 경험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약속 정하기조차 두려울 지경. 소문이라도 이상하게 나면 어쩌나….
상대가 선배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취향을 드러내는 것부터 부담스러웠다. "뭐든 좋습니다, 아무 거나 잘 먹습니다."자장면과 아메리카노에 질릴 때면 '이게 사는 건가'싶은 생각도 들지만, 뻔한 사정 알면서 비싼 거 고를 수도 없는 노릇. 그래, 더치페이!
9일 점심, 호기롭게 "제건 제가…"라고 말한 순간, 선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됐어, 집어 넣어"라는 말에서는 억눌린 모욕감이 감지됐고, 언뜻 강압의 기미마저 느껴졌다. 반복된 시도에도 반응은 대동소이. (쓴 웃음과 함께)"뭐?" (가소롭다는 듯)"네 후배한테나 사!"흔쾌히 응하는 선배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포기했다. 내게도 인간관계라는 게 있으니.
이렇게 힘들게 더치페이를 고집하는 게 좋을까, 아니 더치페이가 절대선일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 코리안페이라고 꼭 나쁘기만 할까, 과도하지만 않다면 정(情)도 느껴지고 또…. 알게 모르게 내면화한 관습 탓일까. 아니면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코리안페이에도 이성적인 뭔가가 있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나는 관습의 아늑함에 젖어 들고 있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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