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의 먹이사슬을 보면 한국 사회의 권력관계가 보인다.'
공적 네트워크 안에서 '접대'라는 이름으로 코리안페이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저 명제는 꽤 그럴싸하다. 조건 없는 대접이란 없거나 드문 법이니까. 그걸 '거래'라고도 하고, 돈(자본)의 합리성이라고 한다. 대개는 내는 쪽이 을이고 받는 쪽이 갑이다. 을은 내면서도 굽실거리고, 갑은 받으면서도 당당하다. 을이 원하는 것, 곧 권력을 갑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직 내에서는 그 관계가 대개는 뒤집힌다.) 그 때의 권력은, 권한의 크기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직업 직종간 위계를 넘어 인품이나 학식 위엄 권위 사회 문화적 영향력 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권력이지만, 여기선 '이권'이라는 좁은 의미로 한정 지어 보기로 하자.
밥값은 관행, 떡값은 뇌물?
굳이 사례를 들출 필요가 있을까. 빙산의 일각으로나마 드러난 권력 비리는 대개 저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는다. 어떨 땐 수평적 친분이나 선후배간의 선의로 치장되고, 또 어떨 땐 스폰서라는 찜찜한 자발성으로 표현되지만 저 관계가 뇌물 비리로 타락하는 덴 그리 큰 낙차가 필요 없다.
2011년 6월 중소기업 경영자 600여명이 제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을 열었다. 한 레미콘 업체 대표는 "접대를 안 하면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려 애를 쓰고 그 결과 중소기업도 부정부패의 줄기가 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다섯 해 전인 2006년에는 거꾸로 시멘트업계가 레미콘업계의 접대와 협찬 요구에 대해 푸념하곤 했다. 전통적으로 시멘트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지만, IMF 이후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갑을 관계가 역전됐던 것.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접대와 상납 문화 안에서 밥값과 떡값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코리안페이의 사회적 비용
그 관행 안에서 코리안페이는 기업의 운명이 걸린 문제일지 모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 회계연도(2010.4~2011.3)의 27개 주요 증권사 순이익은 전년보다 6.8% 줄어든 2조3,035억원, 접대비는 18.2% 증가한 1,116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증권사 평균 조사연구비는 9억6,000만원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기업 접대비는 2008년 7조502억원에서 2011년 8조3,535억으로 증가했다.
접대비의 상당액은 호화 유흥업소에 뿌려진다. 국세청이 최근 공개한 '최근 5년간 법인카드 사용액 중 호화유흥업소 사용실적'을 보면 2011년의 경우 1조원이 넘는 금액이 룸싸롱(9,237억원) 등 호화유흥업소에서 결재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선화 연구위원은 "사원 복지나 연구개발 등 재투자에 쓰일 수 있는 돈이 저런 식으로 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외적이지만 새로운 시도들
서울 종로구청은 지난해 4월부터 협력업체와 접촉이 많은 도시개발부, 세무과 등 15개 부서에 '청렴 식권'을 나누어 주고 민원인과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도록 유도했다. 접대, 청탁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육지책. 지난해 450만원의 예산을 편성한 구청 측은 올해 확대 시행을 검토 중이다.
안랩(전 안철수연구소)은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의 더치페이 습관이 기업문화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안 전 후보는 선거 기간 중 기자들과도 가끔 더치페이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세계 그룹은 8년 전부터 직급 불문 사내외 더치페이 캠페인인 '신세계페이'을 벌이고 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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