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일반행정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모(28)씨는 요새 공부할 맛이 난다. 내년부터 경찰공무원시험(순경 공채) 필기시험 과목이 9급 공무원 시험과 겹쳤기 때문이다. 올해 떨어져도 내년에는 순경 공채까지 응시할 수 있는데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찰 2만명 증원 공약으로 공무원이 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김씨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머리 끈을 졸라 맸다"며 "취업을 못한 친구들도 하나 둘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경 채용인원 확대와 시험과목 변경으로 공무원시험의 메카 노량진이 요동치고 있다. 문호가 넓어진 순경 공채에 환호하는 공무원 시험준비생(이하 공시족)이 있는 반면, 순경만 바라보던 공시족들은 위기감을 호소한다. 시험이 쉬워지는 순경 공채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경찰공무원임용령(대통령령)이 개정돼 내년부터 순경 공채 필기시험은 필수인 영어 한국사에, 형법 형사소송법 경찰학개론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중 세 과목을 선택해 치러진다. 올해까지는 영어 한국사 형법 형사소송법 경찰학개론이 모두 필수였다. 고졸자 공직진출 확대를 위한 조치지만 형법 형사소송법 등 어려운 법률보다 초ㆍ중ㆍ고부터 꾸준히 공부한 국어 사회 과학에 수험생이 몰릴 것은 뻔하다.
노량진 학원가는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원 상담실 앞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도 북적거리고 상담전화도 폭주하고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순경 공채 관련 상담이 지난해 이맘때보다 40% 이상 늘어나 밥 먹을 시간도 모자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에 순경공채를 준비하던 이들은 '올해 붙지 못하면 내년부터 합격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압박감에 짓눌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3월 치러지는 올해 1차 순경 공채에는 1,452명을 뽑는데 3만4,155명이 몰렸다. 경쟁률은 평균 23.5대 1로 이전과 비슷하지만 응시인원 숫자는 지난해 3차 공채 때의 2만8,675명보다 5,480명이나 늘었다. 남자 순경 3명을 뽑는 광주에서는 800명이 접수해 역대 최고인 경쟁률 266.6대 1을 기록했다.
3년째 순경 공채에만 매달리고 있는 박모(30)씨는 "올해 끝내야 한다는 걱정에 잠이 안 올 지경"이라며 "경찰학원 강의실은 막차를 타려는 이들로 이른 아침부터 연일 문전성시"라고 말했다.
쉬워진 시험이 경찰 수사력을 저하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 현직 경찰관은 "경찰학교에서 형사소송법 등을 배워도 수험기간만큼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법과 경찰학 등에 대한 이해는 수사력과 직결될 뿐 아니라 경찰의 소양 및 사명감의 바탕"이라며 "경찰은 순찰을 도는 등 몸으로만 때우면 되는 직업이 아닌데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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