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코리안페이가 권력관계에서 비롯돼 교환관계로 변질돼왔다는 의견이었다. 상급자와 하급자, 남성과 여성, 연장자와 연소자의 위계에서 시작돼 그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코리안페이 관습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저 견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본서열화를 전제한다. 상급자(연장자)는 하급자(연소자)의 밥값을 대신 내줌으로써 사적인 차원에서 자본을 재분배하고 서열화의 긴장을 완화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 특유의 정(情) 문화와 서구의 타산적 합리주의적 생활습관에 대한 거부감도 코리안페이의 생명력을 강화했다.
문제는 상급자, 남성, 연장자라는 전통적 '갑(甲)'이 더 이상 갑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갑 위계는 여기저기서 와해되고 있는데 지불 위계가 못 따라가는 것이다. 처자식 딸린 선배도, 취업 못한 남성도 전통이 억지로 입혀준 갑의 옷을 입고 원치 않는 의무와 권리를 강요 받고 있는 것이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코리안페이 문화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유교주의적인 전통에서 유래했다"며 "과거에는 '너그러움'의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밥을 사 주고 아랫사람의 존경과 충성을 요구하는 일종의 교환 관계가 되었다" 고 말했다. 그는 "코리안페이가 사적인 영역에서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권력의 위계관계로 이어지는 게 문제"라며 "코리안페이로 강화되는 위계문화는 개인간 평등한 관계를 가로막고,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남녀 관계에서 남성들이 더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두고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이루지 못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2차, 3차 데이트 비용까지 지불하며 경제력을 과시하고, 여성들은 남성에게 얼마나 얻어먹었는지를 자신의 가치로 여긴다"며 "자유로워야 하는 남녀 관계가 돈에 얽매이는 관계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력이 없는 선배는 선배 자격을 얻지 못하고 돈이 없는 남성들은 연애 시장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며 "허례허식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 김갑수씨는 "코리안페이 현상은 자산 서열화의 한 현상이겠지만, 사주고 얻어먹는 관계가 정형화했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서점 매대를 점령해 온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들이 사람을 자산으로, 인간관계를 자산 관계망(관계자본)으로 전제하는 현실을 예로 들며 "그런 인식 안에서 인격체적 관계가 형성될 여지는 협소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령 은퇴세대에게 코리안페이는 잔인한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한다. 후배세대를 만나든 동년배 모임에 나가든 늘 사기도 부담스럽고 얻어 먹기도 민망한 일. 고령자의 3대 불안으로 꼽히는 건강과 돈(물질적 여유), 고독(인간관계) 가운데 두 가지를 코리안페이가 가로막고 있는 셈. 더욱이 한국은 전체 인구대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11.4%(2011년 기준)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노인빈곤율도 45.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보건사회연구원)다. 해서 더치페이가 아니면 모임 자체가 지속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방송인 김씨는 "노인들의 경우 더치페이에 대한 반감도 상대적으로 강하고 번갈아 내거나 신세 진 사람이 내는 등 코리안페이의 자체합리성이라는 것도 있다"며 "다만 그 관행이 장기화할 경우 부담이 불균등해질 수밖에 없고, 타격 또한 크기 때문에 회비제 등 절충형 더치페이 관행이 여느 세대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정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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