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운동이 일어났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기미독립선언서의 영문 번역본을 새긴 동판이 있다. 이 번역본은 1919년 3월 미주 한인들이 현지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면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번역한 것. 그런데 번역 내용 중 일부 오역 및 지나친 의역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재번역을 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지만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이므로 그대로 살려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번역본에서는 명문으로 꼽히는 기미독립선언서의 원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오역과 의역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1일 독립기념관과 서울 종로구청 등에 따르면 영문 번역본은 원문의 '5천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를 'We make this proclamation having back of us 5000 years of history'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잘 쓰지 않는 표현(have back of us) 대신 'on the foundation of' 정도로 번역하는 게 보다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영문 번역본은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으로 시작하는 선언서 넷째 문단에서 '슬프다'는 표현을 'Assuredly'(기필코)로 표기했다.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지난 한 때의 형세'라는 부분은 원문에 나오는 사람을 'insect'(곤충)로 번역했다.
선언서에 붙은 '공약 3장'에도 번역본은 뜻이 전혀 다른 단어를 썼다. 가령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라는 부분을 영문으로 바꾸면서 '정의'와 '생존'을 의미가 다른 'truth', 'life'로 각각 옮겼다. '인도(人道)'는 번역 과정에서 아예 빠졌고, 원문에 없던 'religion'(종교)라는 단어가 쓰였다.
또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는 문장은 '누구에게도 폭력이 가해지게 하지 마라'(Let no violence be done to any one)로 의역했다. 'sincere'(진실된)를 'sincero'라고 잘못 쓰기도 했다.
이 영문 번역본은 일제강점기 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가 1919년 3월 미국에서 열었던 만세운동 때 나눠준 유인물에 실린 것으로, 안창호 선생의 장녀인 수잔 안 여사는 이 유인물을 1985년 3월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정확한 번역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교포가 기미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바꾸면서 일부 오류가 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 자체도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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