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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즐거운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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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즐거운 비명

입력
2013.03.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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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가 나오는 계절이 되면 울고 싶다." 칠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현역 비평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윤식 선생의 탄식이다. 난 이즈음이면 늘 이 말이 떠오른다.

계간지라고 하면, 아마도 무슨 뜻인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매 계절마다 한 번씩 발행되는 잡지를 계간지라고 한다. 말하자면, 일 년에 네 번 발행되는 잡지라는 뜻인데, 매일 발행되는 신문이나 매월 발행되는 월간지 등과 달리 오늘날 문학잡지들은, 월간지 체제를 고수하는 '현대문학'과 '문학사상'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계간지 형태로 발간되고 있는 편이다. 예컨대, 이미 통권 200호에 육박하는 '창작과비평'을 비롯하여 '문학동네', '문학과사회', '세계의 문학' 등의 문학잡지들이 모두 그러하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계간지 체제를 선택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와 무관하지 않다. 수요가 많다면 문학잡지가 월간지나 주간지, 나아가서 일간지 체제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간신문마저 그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문학이라고 어떤 대책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문학이 월간에서 계간으로, 점차 자신의 몸피를 줄여가게 된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발행 횟수를 확 줄여버리자 오히려 문학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더 적합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계간지는 일간지나 월간지의 기동성이나 대중성을 잃는 대가로 긴 시간에서 우러나는 깊은 성찰과 참신한 상상력을 담아내는 데 적합한 형식을 얻게 되었다. 신작시와 소설들을 게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잡지마다 그들 나름대로 오늘 우리 문학이 직면하고 있는 현안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진단을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기획, 소개하고 있는 문학계간지들이 오늘날 한국문학의 가장 따끈따끈한 현장을 자임하게 된 데는 이러한 연유가 있다.

3월 초, 이즈음은 조만간 만개할 봄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문학 계간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이기도 한다. 새로운 시와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니 김윤식 선생의 말대로 울고 싶다. 그것은 반가움일 수도 있고 부담일 수도 있으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각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어쨌든 총체적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고만 해두자. 사실, 계간지가 아니라면 오랜 만에 중편소설을 발표하는 신경숙의 신작 소설 을 읽는 기쁨을 어디에서 누릴 것이며, 십여 년 만에 시집 를 펴낸 이성복의 시에 대한 감상을 어디에서 확인할 것인가. 비록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독자의 수가 점차 줄어든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학잡지가 꾸려지고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이번 계절에는 시기상 아무래도 지난 대선 결과가 향후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는 코너들과 새로운 체제에 대한 불안과 우려, 그리고 고언들을 제기하는 기획들에 눈길이 간다. 임박한 현장에서는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면들을 '문학'의 안목으로 진단하는 자리는 새삼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최근 여러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펴내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반성과 전망을 제기하는 좌담 역시 흥미롭다. 중국 소설가 모옌의 노벨상 수상을 진단하고 있는 글까지 포함하여 이 좌담은 일본이라는 필터를 통해 외국문학의 일부분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우리문학이 우리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세계문학전집을 재구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한다.

한 겨울 내내 웅크리고 있던 정신을 기지개 켜게 하고 싶다면 문학 계간지를 통한 사유의 운동을 추천하고 싶다. 꽃과 풀과 바람과 햇살이 전해주는 봄기운도 최고의 선물이 될 테지만, 아직 잉크 냄새조차 가시지 않은 새 계간지가 선사하는 신선한 자극 역시 그에 버금가는 봄의 행복이 될 것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ㆍ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신수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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