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래 몸에 밴 습관이 둘 있다. 하나는 마음이 느슨해졌다 싶으면 커피를 마시고 빡빡하다 싶으면 차를 마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을 듣는 것이다. 제 마음 스스로 조절하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하겠지만, 마음 수양이 덜 된 까닭에 커피와 차를 번갈아 마시면서 조율한다. 어쩌면 마음을 핑계로 커피와 차를 함께 즐기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논리적 글쓰기를 해야 하는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하나 골라 듣는 것은 피아노의 건반이 빚어내는 명료함과 치밀함을 채우고 싶은 까닭이다. 그러나 감성적 글쓰기를 하거나 묵직한 사유가 필요한 날에는 차분히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을 통해 웅숭깊은 생각의 샘을 마련한다. 이 두 가지 습관이 나로서 누리는 큰 호사요 사치지만 그래도 호들갑스러운 것도 아니고 돈 드는 일도 아니니 굳이 책잡힐 일은 아닌 듯싶어 오랫동안 지속된 일이다.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을 카살스의 연주로 듣는 게 그저 명장의 명연쯤으로만 듣는 것이라면 예의가 아니다. 그가 현대 첼로 연주의 아버지라서가 아니다. 내가 카살스의 연주를 좋아하는 것은 그에 대한, 그의 삶에 대한 존경과 본받고 싶은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다. 카살스는 열한 살 때 바르셀로나 음악원에서 첼로를 배웠는데 불과 일 년 뒤에는 이미 구시대 첼로 주법의 결함을 찾아내어 합리적이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했다. 이쯤이면 천재가 아닌가. 실제로 3년 뒤 그는 스승 가르시아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새로운 운지법을 고안해서 첼로 연주의 새로운 역사를 다시 썼다.
하지만 내가 카살스에 특별히 끌리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는 열세 살 때인 1889년 어느 날 바르셀로나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200년이나 잠들어 있던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 필사본 악보를 발견했다. 그 어린 나이에 그 모음곡의 진가를 발견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소년 카살스는 서둘거나 성급하지 않았다. 그는 12년 동안 날마다 그 곡을 연습하고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물다섯 살 청년 카살스는 이 '첼로의 성서'를 완전한 형태로 연주해서 세계에 알렸다.
젊음은 패기라는 자산은 마련했지만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은 모자라기 쉽다. 그러나 카살스는 소년에서 청년에 이르기까지 서둘지도 소홀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첼로의 최고봉이었다. 불과 스물두 살에 바르셀로나 음악원의 교수에 취임하고 현악4중주단을 조직할 만큼 이미 그는 곧바로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소박하고 겸손했으며 단호하기도 했다. 1936년 에스파냐 내란 이후 프랑코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가 몇 번이나 죽을 뻔 했지만 그의 인품을 존경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번번이 풀려났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났으며 이후에도 프랑코 정권을 승인하는 나라에서는 결코 출연하지 않았다.
카살스는 헌책방에서 바흐의 모음곡을 발견하고 연습을 거듭한 뒤 공개 연주한 뒤에도 일과처럼 연습했고, 예순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녹음을 시작했다. 그 끈기와 단호함이라니! 그러니 내가 매주 듣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전적으로 카살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뭉근하게 기다리며 연마한 카살스, 독재에 항거한 카살스, 첼로를 부활시킨 카살스, 겸손하고 소박한 카살스. 그런 카살스를 들을 때마다 삶은 가속도로 사는 것이 아니라 등속도로 살아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늘 쫓기듯 허겁지겁 정신없이 내달리는 삶을 잠시 멈추고 깊은 숨을 들이키며 지난 한 주의 바튼 삶을 반성하고 다시 한 주를 조붓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다잡을 수 있게 해주는 카살스가 고맙다.
커피와 차,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카살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나는 또 다시 한 주를 차분하게 채워나간다. 그것이 내가 누리는 최상의 사치이다. 카살스의 뭉근함을 늘 새롭게 떠올리면서.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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