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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비부비' 장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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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비부비' 장관들

입력
2013.03.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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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래시 거래가액을 실제보다 낮춰 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까. 퇴직 후 직전에 맡은 업무와 관련 있는 기관에 취업한 경력이 있습니까. 상속ㆍ증여와 관련한 세금은 모두 납부하셨습니까. 본인의 저서, 논문 중 표절시비 우려가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고위공직자 자기검증서에 담긴 내용을 훑어봤다. 200여 개에 달하는 문항에는 부동산 투기를 비롯해 탈세와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병역문제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흠결이라도 끄집어낼 만한 질문이 망라돼있다. 과장하자면 한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현미경 들여다 보듯 볼 수 있다.

일별 후 먼저 드는 소감은 더 이상 추가할 게 없을 만큼 치밀하고 꼼꼼하다는 거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고위 공직 후보자용으로 만든 자술서 질문 항목이 63개인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선진국 어느 정부도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검증서를 만든 곳은 없을 듯싶다. 하지만 과연 검증서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장관 후보자 17명도 당연히 검증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런데 예외 없이 검증서에 포함된 내용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찌 된 일 일까. 후보자들이 솔직히 응답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제대로 답변을 했는데 검증팀이 별 문제 삼지 않은 채 넘어갔거나 둘 중의 하나다. 만약 후보자들이 거짓말을 했다면 의당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반면 검증을 소홀히 했다면 인사권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뭐 하러 검증서를 받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검증서가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중요한 여과장치가 아니라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얘기밖에는 안 된다.

장관 후보자들에게 거론되는 의혹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수법이 진화해 '부담부 증여'라는 '세(稅)테크 기법'이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병역 의혹만 해도 허리디스크, 폐결핵뿐 아니라 두드러기, 손가락 마비 등 일반인은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사유로 면제 혜택을 받았다. 똑똑하고 집안 좋은 이들이 유독 몸은 그리 부실했는지, 한데 지금은 어떻게 멀쩡해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수십 년간 몰랐다던 세금 탈루 의혹이 일자 지각 납부하면서 없던 일로 하자고 하고, 편법 증여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는 공직은 생각도 하지 않을 때였다"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해해달라고 하소연한다. 공직과 로펌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엄청난 돈을 챙긴 능력자들은 "일부 급여를 사회에 기부할 용의가 있다"며 되레 선심 쓰는 듯 한다.

그나마 의혹이 한 두 가지라면 이해할 법도 한데 무더기로 걸린 이들이 여럿이다.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을 가리켜 '4+2 이수자'라는 비아냥까지 나도는 마당이다. 병역특혜,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등 고전적인 4가지 항목에 논문표절, 전관예우까지 더해졌다는 의미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가 논문표절 의혹 하나만으로 사퇴했고, 이명박 정부 초기 청문회에서도 둘 이상의 의혹을 사퇴 기준으로 삼았던 점을 적용하면 이번 장관 후보 가운데 살아남을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렇듯 부도덕한 인물들이 고위 공직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거다. 한 마디로 돈도 갖고 명예도 갖고 권력도 쥐겠다는 욕심이다. 스스로 티끌이 많다고 판단되면 자리를 거절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언론에서 집중 포화를 맞아도 누구 하나 그만두는 사람이 없다.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청와대는 "사퇴해야 할 만큼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배수진을 친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깨끗하고 유능하고 투명한 정부'를 이런 사람들로 이끌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저잣거리에서는 '부비부비'(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니 '증사모'(증여세 탈루를 사랑하는 모임)니 하며 장관들을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고 있다. 그렇게 삼베바지에 방귀 새듯 민심은 서서히 멀어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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