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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선전도수'KGB 오스카'…한푼 제작비 아쉬운 감독들 울며 겨자먹기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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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선전도수'KGB 오스카'…한푼 제작비 아쉬운 감독들 울며 겨자먹기 수상

입력
2013.03.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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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러시아 영화감독 카렌 샤크나자로프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연락을 받았다. FSB가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이었다. 샤크나자로프는 FSB의 전신이 구소련 비밀경찰 조직인 국가보안위원회(KGB)라는 점 때문에 ‘KGB 오스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상을 받으면 영화계 동료들이 수군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FSB는 러시아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정부기관이기 때문이었다. 시상식 날 그는 턱시도를 차려 입고 모스크바 루비안코 광장에 있는 FSB 본부로 향했다. 파파라치나 일반 관객 대신 보안요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시상식장에서 샤크나자로프는 정부와 영화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수상 소감을 밝혔다.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기관인 FSB는 왜 영화상을 수여하는 것일까. 이는 KGB 직원으로 출발해 FSB 국장까지 지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대중문화를 장악하려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최근 분석했다. 푸틴은 2000년 집권 이래 러시아 영화와 TV를 후원하는 데 열을 올려 왔다. FSB 영화상을 처음 제정한 것은 2006년. 매년 KGB와 FSB 요원들의 활약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영화가 이 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지난해 수상작인 샤크나자로프의 ‘백호’는 2차대전을 배경으로 구 소련군 탱크 운전병이 독일 나치 유령부대와 싸우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전투 중 기억상실증에 걸리지만 “집에 돌아가 치료를 받으라”는 자상한 KGB 요원의 제안도 거절한 채 “나는 소련군이다”라며 승리를 향해 돌진한다. FP는 주인공의 “로봇 같은 애국심이 바로 러시아 정부가 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FSB는 전장의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KGB 요원 역할의 배우에게는 올해의 배우상을 안겼다.

FSB는 직접 영화, TV 드라마도 제작한다. 2004년에는 2002년 일어난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을 모티프로 삼은 영화 ‘퍼스널 넘버’를 만드는 데 700만달러(76억원)를 쏟아 부었다.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은 체첸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반군 42명이 850명의 관람객을 인질로 잡자 FSB가 이를 진압하려고 가스를 살포해 인질 중 130명이 사망한 최악의 참사였다. 하지만 배경을 극장에서 서커스장으로 옮긴 영화에서 인질들은 FSB의 활약에 힘입어 모두 무사히 구출된다.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얼의 알렉산더 체르카소프는 이런 시도가 “러시아 정보기관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고 요원들을 배트맨 같은 영웅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영화계는 푸틴 정권의 당근을 거부할 처지가 아니어서 양측의 협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FP는 지적했다. 한 원로 영화감독은 “러시아 영화계에는 90년대 초반 구 소련 붕괴 당시 많은 영화 제작사가 문을 닫은 트라우마가 있다”며 “국가적 지원없이 영화 제작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러시아에서는 항상 위가 아래를 지배했고, 권력을 따르는 것은 역사적 운명 같았다”며 “우리가 FSB의 제작비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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