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 과정에서 동료가 사망하자 4년 동안 도망을 다닌 40대 남성에 대해 법원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정형식)는 폭행 및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신모(43)씨에 대해 원심과 같이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하고, 폭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경기 양주시 한 LPG충전소에서 일하던 신씨는 2008년 3월 동료 종업원 한모씨와 영수증 발부 문제로 시비가 붙어 서로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벌였다.
문제는 건장했던 한씨가 갑자기 땅바닥에 주저앉고 정신을 잃어 버리면서 시작됐다. 놀란 신씨는 인공호흡을 한 뒤 119를 불러 한씨를 병원으로 보냈지만, 한씨는 병원으로 가던 중 ‘심장동맥 경화에 의한 허혈성 심질환’으로 사망했다. 사람이 죽자 겁이 난 신씨는 그 길로 4년 동안 수사망을 피해 도피행각을 벌였으나, 결국 붙잡혀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중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신씨였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한씨가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을 신씨의 폭행이라 단정짓기엔 폭행의 정도가 중하지 않았고, 한씨가 의식을 잃은 이후 응급조치를 취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무조건 신씨에게 죽음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신씨에게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할 경우 법이 정한 과실 책임의 한계를 벗어나게 돼 이 부분에 대해선 무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폭행치사 혐의는 폭행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피해자가 사망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신씨가 건장한 체격에 외견상 아픈 모습이 아니었던 한씨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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