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통령 시대 개막으로 '신 여성시대'가 열렸지만, 일제강점기에 해방을 위해 헌신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여전히 외면 받고 있다. 정부나 민간의 무관심과 홀대로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작업이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역사에 묻힌 여성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은 정부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28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 3ㆍ1절 훈ㆍ포장 수여 대상자를 포함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은 사람은 모두 1만3,393명. 그 중 여성은 전체의 1.69%인 226명뿐이다. 또 최근 5년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2,216명 중에서도 여성은 32명(1.44%)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의 공적과 삶이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단 3, 4줄로 정리된 게 허다하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인데도 여성독립운동가가 터무니 없이 적은 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 여성의 의식이 낮아 투신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 독립운동 전문가인 박용옥 전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여성들이 상당히 많지만 국가보훈처에서는 일반적으로 3개월 이상 감옥생활을 해야 유공자로 인정하기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 상당수가 역사에 묻혀 있다"고 지적했다. 똑같이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도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여성의 형이 비교적 가벼웠던 게 당시 판결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징역생활을 잣대로 독립운동가를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게 박 교수 주장이다.
국가기록원이 28일 공개한 1923년 영국 정보국 극동지부의 3ㆍ1운동 관련 문서에도 "당시 모든 주요도시와 읍내의 독립투사들이 시위를 조직했고 수많은 젊은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운동에 가담했다"고 적시할 정도였다.
민간 연구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소재로 시를 쓰고 있는 이윤옥(54ㆍ한국외국어대 강사)씨는 "여성독립운동가 중 유관순 열사 논문만 수백 편 될 뿐 나머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나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발굴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해방 이후 제대로 대접을 받는 여성독립운동가나 후손이 드문 실정이다. 1939년 중국에서 활약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14살의 나이로 입대해 일본군 정보 수집 및 조선인 사병탈출을 도왔던 독립운동가 오희옥(87) 할머니는 "나처럼 광복군에 들어가 독립운동 한 사람들이야 훈장이라도 받아 정부로부터 조그만 혜택이라도 받지만 3ㆍ1운동 때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르고, 군자금을 댔던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와 후손 대부분이 명예도, 혜택도 받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수원=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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