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아이들 돌보는 게 유일한 바람입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 아동복지시설 '진우원'의 원장 위제하(93)선생은 독립운동가 출신이지만 지역 아동복지시설의 대부로 통한다. 일제 강점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가난한 사람과 조국을 위해 일해야 겠다는 일념에서 평생을 아동복지에 바치고 있다. 선생은 1963년부터 진우원 원장을 맡아 6월 50년 근속을 앞두고 있다.
해방 직후인 46년 봄 평양고아원 원장을 맡은 게 아동복지사업과의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을 고아와 빈민을 보살피는 데 전념하고 있다.
경남지역 생존 애국지사 3명 가운데 1명으로 경남도청에서 열리는 제94주년 3ㆍ1절 기념식에 참석하는 그에게 34년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되고 있다.
16세였던 34년 10월 고향인 평북 정주군 갈산면에서'조선을 빛내는 소년회가 되자'는 뜻의 독서회'광조소년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아 40년까지 민족의식 및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항일운동을 벌였다. 선생의 이런 활동은 2009년 뒤늦게 자식들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자료를 찾아내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다. 독립유공자 신청과 함께 정부는 2010년 3·1절에 그의 항일투쟁에 대한 보답으로 건국훈장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그가 복지활동에 뛰어들게 된 데는 당시 시대 상황과 그의 개인 경험이 한몫을 했다. "항일 투쟁 과정에서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매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인 빈민 등 사회 취약계층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2년간 평양고아원장으로 일한 뒤 48년 월남한 그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빈민촌에서 위생보건교육, 문맹퇴치 등 빈민구제사업에 참여했다. 50년 한국전쟁 당시엔 부산에서 빈민의원 지원사업 등을 계속했으며, 63년 6월 지인의 권유로 진우원 원장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진우복지법인을 설립, 아동시설인 진우원과 함께 어린이집, 복지관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 집은 둘째 아들인 동화(64)씨가 맡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원생만 500여명에 달한다. 한때 100명이 넘던 원생은 현재 30명 선으로 대폭 줄었지만 증손자뻘 되는 아이들의'아버지'로 열정을 쏟고 있다. 선생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경남도 사회복지 민간복지 대상을 받았다.
아흔 살을 훌쩍 넘겼지만 건강한 편인 그는 아이들 방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굶는 아이는 거의 없지만 애정과 정성이 필요한 일은 여전히 많아요. 힘 닿는데 까지 고아와 빈민을 위해 일하고 싶소,"
김해=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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