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 졸업생을 대상으로 열린 한 취업설명회. 대형 로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기존 기수 문화에서 탈피해 학벌보다 실력 위주로 능력있는 인재를 뽑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결과를 보면 현실은 또 다시 특정 대학 출신 중심의 채용으로 이뤄져, 결국 이들의 외침은 '립 서비스'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국내 대형 로펌들의 신규 변호사 채용 자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국내 상위 6대 로펌(김앤장 태평양 광장 세종 율촌 화우)의 경우 로스쿨 출신 변호사 채용 인원의 81%가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로스쿨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비 SKY 로스쿨 출신은 9명(11.5%), 지방대 로스쿨 출신은 3명(3.8%)에 불과했다. 국내 25개 로스쿨 중 14개 학교 졸업생은 대형 로펌에 단 1명도 취업하지 못했다.
6대 로펌의 뒤를 잇는 법무법인 바른, 로고스, 충정, 지평지성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들 로펌이 뽑은 33명의 로스쿨 출신 신규 변호사 가운데 16명(48.4%)이 SKY 로스쿨 출신이었고, 이들 대학의 학부 출신까지 포함하면 25명(75.7%)에 달했다. 반면 수도권 소재 비 SKY 로스쿨 출신은 12명(36.4%)이었으며, 지방 로스쿨 출신은 5명(15.2%)에 그쳤다.
대형 로펌들은 이에 대해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로펌의 입장에서 실력을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인턴 등 실무연수를 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지방대 로스쿨생들의 경우 대형 로펌 인턴 경험이 거의 없어 뽑기 어려웠다는 논리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과거 사법연수원 성적은 실무능력에 대한 객관화된 수치로 판단할 수 있었지만, 로스쿨 학점은 실무능력에 대한 변별력이 없다"며 "자연히 인턴 경험이 채용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고 (지방 로스쿨생보다) 더 많이 지원했던 SKY 출신들이 많이 뽑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 로펌들은 취업설명회를 SKY 등 수도권 대학 중심으로 여는 등 처음부터 지방대 로스쿨생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또 대형 로펌들이 지나치게 자사에서의 인턴 경험을 채용 과정에서 중시했던 점도 '학벌 타파'라는 명분은 허울이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한 로스쿨 졸업생은 "모 대형 로펌의 경우 자사 인턴 과정을 채용의 필수 코스로 설정했다"며 "지방 로펌과 기업 등에서의 인턴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아무리 충실하게 기재해도 소용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근 대기업들이 지방대 출신 신입사원의 비율을 제도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도 입맛대로 변호사를 선발해도 된다는 로펌의 인식은 큰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 대기업의 법무팀 관계자는 "학력이 아니라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채용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기업 법무시장과 비교하면, 대형 로펌은 규제가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책무를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한 관계자도 "대형 로펌이 고민과 반성 없이 기존 인식의 틀에서 SKY 출신을 뽑는 이상 로스쿨 시대에도 학벌 타파는 먼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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