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님을 위한 행진곡’이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저항운동가(歌)는 ‘벨라 차오(Bella Ciao)’다. 1930~40년대 스페인 내전과 반(反)파시스트 전투에 나선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부르던 노래다. 죽음을 각오하고 산으로 떠나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애닯고 비장한 내용이다. 이 노래를 부른 젊은이들은 2차 대전 말기 나치의 비호로 재기를 노리던 무솔리니를 알프스 산록에서 체포, 파시스트시대를 끝내 종식시켰다.
■ 이 노래는 이후 쿠바, 이란, 러시아 등 현대의 거의 모든 혁명의 현장에서 불려지면서 이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문화상징이 됐다. ‘벨라 차오’뿐인가. 인간의 의식을 해방시킨 르네상스 운동서부터, 권력과 압제의 본질을 해체한 안토니오 그람시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는 늘 절대권력에 맞서 인류의 정신을 고양시켜온 전위 역할을 해냈다. 그 빛나는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가 최근 세계인으로부터 점점 코미디 같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 이번 주 총선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재정파탄의 위기에서 합당한 경제개혁을 추진해온 집권 민주당 대신 온갖 부패와 마피아, 섹스파티 등에 얽힌 낯 뜨거운 스캔들로 여러 번 낙마한 베를루스코니의 정당이 핵심세력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직 코미디언이 만든 희한한 이름의 ‘오성(五星)운동’당이 꿀리지 않은 세력의 3당으로 대약진했다. 초등생 전원에게 태블릿PC 제공에, 주 30시간 근로 따위를 공약한 덕이다.
■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전문가들의 기고가 재미있다. 이탈리아인들은 강한 힘과 영웅적 카리스마를 가진, 즉 동화 속 쥐떼를 모는 ‘피리 부는 남자’ 같은 인물에 남다른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무솔리니나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열광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합리나 현실보다는 환상을 좇는 성향도 지적한다. “이탈리아에선 환상만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벨라 차오’의 골치 아픈 저항보다는 옛 로마 조상의 영광으로 편히 먹고 사는데 오래 길들여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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