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뭐 하자는 수작이야? 이 감독 미쳤구나." 영화감독이 해외에서 원격으로 연출하겠다는 말에 배우 윤여정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박희순 김민희 김옥빈 등 감독의 '감언이설'에 모인 배우들도 전대미문의 연출 방식에 황당하긴 매한가지.
이재용(47) 감독이 만들어 28일 개봉하는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는 감독이 현장에 전혀 가지 않고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영화를 연출한다는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 감독은 2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말 스마트폰으로 단편영화를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중 원격으로 찍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앉은 자리에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 시대에 영화도 현장에 가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는 광고용 옴니버스 영화 '시네노트'(2012) 중 한 편인 '10분 안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만들면서 한편으로 그 영화의 제작 과정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단편 연출 의뢰를 받은 감독이 공교롭게 여자친구와 데이트 하는 게 잡혀 원격으로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그렇게 원격으로 찍는 이야기를 실제로도 원격으로 찍는다면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이 감독은 3일간 17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200여 시간 분량을 8개월간 편집한 끝에 영화를 완성했다. "시나리오 없이 촬영했기 때문에 편집실에서 시나리오를 쓴 셈이죠.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완성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현장을 떠난 감독의 심정은 어땠을까. "현장에 없으니 여러 가지 불평, 불만, 고충을 들을 일이 없어 더 편하기도 했죠. 결론과 목표를 정하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 과정을 담는 영화이니 어떤 일이 벌어져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는 독특한 취향과 재능을 가진 예술가다. '정사'(1998)나 '스캔들-남녀상열지사'(2003) 같은 정통 극영화에도 능하지만, '다세포소녀'(2006), '여배우들'(2009) 같은 실험적인 영화에서도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 감독은 "좋은 이야기를 좋은 화면에 담아 이야기하는 영화도 좋지만 낯설고 색다른 형식으로 자극을 주는 것도 좋아한다"며 "잘했던 걸 다시 하는 것보단 안 해봤거나 잘 모르는 걸 시도했을 때 더 힘이 난다"고 말했다. "영화란 창작자가 미지의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소통하는 수단"이라고 말하는 이 별난 감독은 올 가을 크랭크인을 목표로 보통 관객들이 보고 감동할 만한 새로운 영화를 준비 중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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