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를 이끌 부처 장관들이 ‘신 전관예우’에 휘말려 있다. ‘신전관예우’란 공직에서 물러난 고위 공직자가 유관 기관에 몸 담아 엄청난 연봉으로 부를 쌓은 뒤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는 데서 붙여진 용어다. 국민들은 “해도 너무 한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다. 그는 군 전역 후 무기중개업체 고문으로 1년10개월간 있으면서 2억1,500만원을 받았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공직에서 물러나 우리금융 사외이사로 3년간 활동하며 2억원의 연봉을 챙겼다.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 역시 검사 퇴임 후 로펌에서 17개월간 근무하며 16억원의 보수를 받았고, 26일 총리 임명안이 통과된 정홍원 총리도 2년간 로펌에 근무하며 6억7,000만원을 받았다. 당사자들은 “적법한 보수였다”며 군색한 변명으로 일관하지만, 이런 신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이 당장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은 전관들이 다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이들 업체의 직ㆍ간접적인 로비 대상이 되거나 영향을 받을 개연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채원호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앙 예 일정 기간 제한하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을 조속히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ㆍ하위 공직자에 초점을 맞춘 공직자윤리법을 손질해 영향력이 막강한 장ㆍ차관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이어 행정관료까지 악습 만연… 전방위 규제가 유착·압력관행 막는 길"
● 채원호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경실련 정책위원장
정책신뢰·사회통합 저해 요인현행 취업 제한 규정 빈틈 곳곳‘김영란법’ 전면시행 서둘러야
요즘 새 정부 인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무성하다. 총리나 장관 등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인사 검증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부적절한 행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국회 인사청문회의 대상을 국무위원까지 확대한 2005년 이후의 일이다. 청문회 검증에는 병역비리,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전관예우 등이 단골메뉴로 올라온다. 전관예우는 법조계의 악습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최근에는 행정부 퇴직 전관의 부적절한 행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11년 5월 여론조사기관인 현대리서치에 의뢰해 중앙부처 공무원 1,6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위공직자 24.3%가 퇴직한 전직 상관을 의식해 의사결정을 내린 경험이 있으며, 15.7%는 부당한 압력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전관에 의한 청탁이 간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현직 공무원이 공직 권한을 사익추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부패행위로 처벌되지만, 전관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규제는 매우 허술하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 수많은 정·관·금융계 인사들이 부패사슬에 연루된 사실은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공직윤리법이 개정되어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이 다소 보완됐지만, 고질적인 전관예우의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전·현직간 부패사슬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역학관계 역전으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2011년 동아시아연구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파워기관 영향력 순위에 삼성, 현대차, SK가 1위부터 3위까지 이름을 올렸고, 청와대는 10위에 그쳤다. 과거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경제권력에 의한 정부 관료 포획으로 정책의 공익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새 정부에서도 전관예우로 각별한 대접을 받았던 인사가 다시 공직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되풀이되려고 한다. 인사권자나 후보자 모두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사익의 대리인이었던 전관이 다시 공익 구현자로 변신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몰염치한 처신이며, 현직에 복귀한다 해도 직업윤리나 공직관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법조계의 전관예우가 사법 정의를 위협하듯이 행정부의 전관예우는 정부의 신뢰 위기나 공정성 위기로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1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84.9%가 공직사회의 알선·청탁이 심각하다고 인식하는데 비해, 공직자는 21.8%만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어 괴리가 크다. 전·현직 부패사슬은 정부의 정책실패 가능성을 높이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때문에 부패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전관뿐만 아니라 현직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 전관의 청탁에 현직이 흔들리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직부패 문제는 전·현직 공직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민간위원도 이해충돌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나 준 사법기관에 참여하는 민간전문가에 대해서도 행위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지방정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정이 그렇다면 저인망식 전방위 규제가 필요하다. 부패사슬의 폐해를 공직자의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바로잡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사익추구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청탁관행으로부터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해 종합적인 입법이 필요한데,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 작년에 입법예고된 바 있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1962년에 이해충돌 관련 규정을 종합해 '뇌물 및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한 바 있다. 캐나다에서도 윤리강령으로 운영되어 왔던 이해충돌 관련 내용을 2006년에 독립된 법률인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하여 운영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2003년부터 공공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 방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회원국에 권고하고 이행상황을 관리해 오고 있다.
혹자는 정당한 청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법안제정에 소극적이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를 범할 수는 없다. 새 정부에서는 김영란법이 조속히 제정되길 기대해 본다.
“공직자윤리는 퇴직 이후도 유효한 것… 사익 위한 도덕적 해이 막을 제약 필요”
●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실행위원
로펌·고문·자문·사외이사…직무관련 기업 재취업 도넘어공직컴백 때 엄정한 잣대 당연
새 정부를 구성할 장관급 후보자들의 도덕성 등 자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명박 정부하의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의혹 건수가 참여정부와 비교하여 배 가까이 늘었는데, 현재까지 보도된 것만으로도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의혹은 역대 최고일 것이라고 한다.
역시 재산과 관련한 의혹이 가장 많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재산이 모두 고위 공직에서 퇴직한 후 급증했다는 것이다. 퇴직 후 곧바로 좋은 곳에 재취업하는 능력도 대단하지만, 탁월한 재산증식 능력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부러울 따름이다. 도대체 어떤 비결이 숨어있는가?
이번에 후보자로 추천된 전직 고위공직자들의 새로운 직업은 고문, 자문, 사외이사, 대표, 총장 등으로 다양하다. 모두 공직에 있을 때의 업무와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된, '이해충돌'의 의혹이 짙은 분야다. 당사자들은 공직에 있었을 때의 직무와 상관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전관예우란 무엇인가. 고위직에서 물러난 이들에게 왜 로펌은 고문 자리는 물론 억대의 보수를 제공하는가. 왜 대기업들은 이들을 사외이사로, 고문으로 모시는가. 무엇을 기대해서인가. 당사자들과 이들을 고위직에 다시 임명하고자 하는 최고 인사권자는 그 답을 애써 외면하지만, 국민들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퇴직한 고위직이 이해충돌이 존재하는 민간기업으로 재취업하고, 이들이 다시 고위직으로 재임용되는 '회전문 인사'는 바람직한가? 어느 윤리학자는 공직자에게는 '축소된 사생활의 법칙'이 적용되어, 일반 국민들과 달리 사생활이 제약됨을 강조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직자의 행동과 말 한마디가 국민과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공직자윤리법상의 백지신탁제도가 국회의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위헌심판청구에 대한 것인데, 헌재는 이 제도가 국회의원의 공정한 직무수행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민의 신뢰확보를 위하여 유효한 제도라는 이유로 합헌판결을 내렸다. 공직자에게 윤리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사생활 축소의 법칙은 공직 재직 중은 물론이고 퇴직 후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선진국의 공직윤리 관련법에서는 공직 퇴직 후 일정 기간 혹은 영구히 이해충돌이 있는 직위에는 취업은 물론 관련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공직윤리는 퇴직 후에도 변함없이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퇴직 후 활동 제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충돌의 발생 가능성 여부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정부윤리법에서는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광범위하게 규제하는 반면, 우리의 공직자윤리법은 제한적으로만 적용하여 규제의 정도가 상당히 약하다. 특히 장ㆍ차관 등 영향력이 막강한 고위직보다는 중ㆍ하위직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의혹을 가진 인사들이 이번 인사청문회에 장관급 후보자로 대거 추천되었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고위 공직자 인선의 윤리적 기준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검증절차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겐 아직까지도 장관급 고위 공직자에게 필요한 자질이나 도덕적 기준, 체계적 절차가 없다. 인사권자가 알아서 하는 구조다. 미국 백악관이 상원 인사청문회에 후보자를 보내기 전에 미리 준비된 230여 개에 이르는 사항을 관련 기관에서 엄밀하게 조사하며, 이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만 상원으로 보내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장관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고, 국민들의 행동과 생각의 기준이 되는 인사여야 한다. 엄격한 기준과 절차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직자의 윤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즉 국민 모두를 배려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지금 여러 의혹들이 제기된 장관 후보자들에게서 이와 같은 가치를 과연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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