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85회 아카데미상 후보에는 미국적 가치를 앞세우는 영화들이 유독 많았다. 테헤란 인질 구출 작전을 다룬 '아르고', 빈 라덴 사살 작전을 그린'제로 다크 서티',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은 '링컨' 등이 그런 영화들이다. 위대한 아메리카를 부르짖는 이런 영화 가운데서 '라이프 오프 파이'가 달성한 4관왕이 더욱 이채롭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가 원작으로 난파돼 망망대해의 구명 보트에 호랑이와 함께 남게 된 소년이 겪는 227일간의 놀라운 여정을 담았다. 리안 감독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바다에서 진행되고, 벵골 호랑이를 주연으로 써야 한다는 어려움을 딛고 추상적인 원작의 의미를 살려가며 3D의 황홀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원작은 영화화하기에 만만치 않지만 리안이었기에 이런 영화가 가능했다고 영화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리안은 24일(현지시간)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생큐, 무비 갓(Movie God)"이라며 영화의 신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객석의 영화인들은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는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고 리안은 "생큐 아카데미, 시에시에, 나마스테"라며 영어, 중국어, 인도어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악상을 받은 스태프들은 "위대한 상을 위대한 리안과 나누고 싶다"며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작품상, 각색상, 편집상 등 3관왕을 거머쥔 '아르고'도 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아르고'는 지난달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아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던 작품이다. 스타 배우 출신인 밴 애플렉은 세 번째 연출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아 감독의 자질을 공인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상 수상작은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영상을 통해 호명해 눈길을 끌었다.
최다인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기대가 높았던 '링컨'은 남우주연상과 미술상 트로피로 만족해야 했다.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세 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은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자신을 호명한 메릴 스트립을 가리켜 "3년 전엔 내가 마거릿 대처 역할을 하기로 내정됐었고 스트립은 스필버그 감독이 링컨으로 주목한 배우였다"고 농담하는 여유를 보였다.
여우주연상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남편과 사별 한 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회사 모든 직원들과 잠자리를 갖는 티파니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의 차지였다. 로렌스는 불과 스물 셋의 나이로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차스테인 등 강력한 라이벌들을 물리치고 역대 최연소로 최고 여배우의 영예를 얻었다.
'레미제라블'의 애절한 팡틴 역을 연기한 앤 해서웨이는 골든글로브, 미국 배우조합상 등에 이어 아카데미까지 석권해 여우조연상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장고:분노의 추적자'의 크리스토프 발츠는 각본상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향해 "어느 영웅의 여행을 따라갔다"며 "당신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했기 때문이다"라며 영화에서 선보인 것 못지 않은 말솜씨를 발휘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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