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힘 빼고 간결하고 가볍게자본주의의 상징체계 시적 해체줄자·저울·시계 등에 숨결 부여
8년 만에 새 시집을 낸 함민복(51) 시인을 만나러 간 곳은 그가 2010년 가을부터 아내와 함께 인삼을 파는 강화도 초지대교 부근, 인삼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인삼센터' 한 켠의 작은 점포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식처럼 키우는 오누이 개의 밥그릇을 말갛게 닦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여자가 들기에는 무거운", 박스 가득 담긴 인삼들을 저온창고에서 꺼내 점포로 옮기는 것이 그의 오전 일과. 인삼 때문에 난방을 할 수 없는 냉기 도는 가게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 전기히터의 온기를 나누며 책을 읽거나 시상을 다듬고, 뜻밖에도, 때때로 인삼을 판다. 아직도 카드 리더기 사용법을 몰라 당황하기 일쑤지만.
보증금 없는 월세 10만 원짜리 집에 홀로 살며 맘 내키면 어부로, 대체로는 시인으로 살던 그에게, 이것은 존재론적 변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다정하고 명랑한 아내가 생겼고, 이정록 시인의 표현처럼 '된장, 고추장보다 무서운 가장'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고기잡이 배를 타본 지 벌써 몇 년째인, 다소 도회적인 직업 생활인이 되었다. 새 시집 (창비)은 그 변화가 초래한 시적 양상들을 확인해주는 소박한 쾌거라고 해도 좋겠다.
언제라고 그가 기교에 치중하는 시인이었으랴마는,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은 더더욱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쓰려한 흔적들이 자욱하다. 시인은 "도무지 시가 아닌 것의 경계로까지 나아가 더 쉽고 간결하게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능란한 기교와 기발한 상상력은 젊은 후배들에게 맡겨두고, 시를 날아가 사라져버려도 좋을 만큼 더 가볍게 만드는 것이 시단의 두툼한 허리가 된 자신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그에게 접두어처럼 따라붙는 두 글자, 가난. '가난과 삶을 통분해버린 시 세계', '가난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따스하고 긍정적인 삶의 철학' '궁핍과 결핍으로 자본주의의 진정한 승자가 된 시인'…. 하지만 그에게 바쳐진 이런 찬사들에선, 우리의 현란한 자본주의적 욕망을 은폐하려는 위선의 기미가 읽힌다. 누구도 가난하려 하지 않는 이 시대, 사람들은, 흡사 예수처럼, 함민복이라는 기표를 가난의 대속자로 소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옛적 성공회 예배당을 개조한 동막의 두부젓국 식당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시인은 "사실 그런 말을 듣는 게 싫다"고 했다. 지금도 어느 밤이면 "아직도 가난을 팔아먹고 사냐?"는 문자메시지가 그를 찌른다. 각고의 탁마를 거쳐 새로운 시를 내놔도 가난의 프레임에 속박되고 마니 시들에도 미안한 노릇일 게다. 하지만 그는 "나의 것이 정녕 가난일까, 더 가난한 이들에게 그것은 과장이 아닐까" 하는 불편함이 버석거렸다고 했다. 이것은 이제는 부유해진 자가 아니라 태생이 선한 자의 불편함이다.
그리하여 8년 만에 새 시집을 내면서 시인이 가장 공들인 것은 도구적 이성에 뿌리 박은 자본주의의 상징체계를 시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줄자 저울 시계 나침반 화살표 같은 냉혹한 계량도구들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뜨거운 숨결을 부여받은 인간적 존재로 화한다. 줄자는 '감겨 제 몸을 재고 있는, 끝을 태아처럼 품고 있는 수도자의 뇌'가 되고, 한치도 빼앗길 수 없다는 듯 팽팽한 양팔저울은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가는'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을 이루는 '수평의 깊이'가 된다. 향후 함민복 시 세계가 전개될 방향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새 시집은 응당 시가 되었어야 할 것들을 산문에 야금야금 빼먹은 탓에 이렇게 늦어졌다고 한다. 산문을 쓸 땐 시를 쓰지 못하는 습벽이자, 그의 산문이 시적 긴장을 잃지 않는 비결이었다. 그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아내에게 "그깟 거 내가 원고 몇 장 더 쓰면 된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기도 한다. 독자로서의 바람이라면, 시든 산문이든, 부디 다산의 필자로 거듭나 책임감 있는 남편이 되어 주길….
강화=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선임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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