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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가 업자 로비창구?

입력
2013.02.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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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대통령직 인수위는 외형상 아무도 접촉할 수 없는 '봉쇄형 인수위'였다. 공무원이나 공직자를 통해서 내부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인수위 출입기자들에게서도 아무 특기할 얘기를 듣기가 어려웠다. 건너 들은 게 약간 있는데, 그 중의 일부는 맞고 일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전혀 모르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드디어 인수위의 국정과제 제안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다. 앞으로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있는 최초의 공식 보고서라서 나도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다 덮고 나서 내가 받은 느낌은,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경제 민주화의 후퇴냐, 아니냐, 그런 정무적 분야는 아니다. 아니면 복지가 약화되었느냐, 애초의 약속대로 추진되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업자들의 로비, 이게 내가 이 보고서를 보고 느낀 제일 큰 인상이다. 인수위 기간 중 업자들의 로비가 있었는지, 아니면 평소에 관리 대상이던 사람들이 인수위로 간 건지 그건 잘 모른다. 하여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가 아닌 농업, 수산업 분야나 관광 분야 같은 데 업자 로비 흔적이 너무 많이 보였다.

'갯벌 민영화'로 작년 내내 논쟁이었던 대기업의 해양 산업 진출은 평소 그들의 소신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걸 위해 해양수산부를 새로 만들자고 한 건가? 천일염의 세계화, 이런 것도 국정 과제인가 싶다. 거의 소꿉장난 수준 아닌가. 특정업체가 천일염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 그런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국적 크루즈 육성, 이건 또 뭔가?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정부한테 뭘 또 해달라고 누군가 로비하지 않은 이상, 이런 게 국정 과제로 들어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기후 이상에 의한 재난 증가에 대한 보험 상품을 늘리겠다는 것, 이것도 공적 장치로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민간 보험회사에도 보조금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건지, 문구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당선자 근처에 법조인이 너무 많다더니, 기막힌 국정 과제가 또 있다. 로스쿨생의 해외 법률분야 취업지원, 이걸 왜 정부 과제로 하나? 게다가 이게 안 그래도 빈약한 청년 고용 정책이라니, 이러려면 로스쿨을 왜 만들었나 싶다. 청년 고용과 관련해 한 마디만 하자. 외국에 청년들을 취업시키는 게 두 꼭지나 나오는 엄청 중요한 사업으로 되어있는데, 이거 남사스러운 일이다. 다른 나라도 청년 취업이 어려운데 우리의 문제를 남한테 풀어달라고 하는 것, 해도 몰래 하거나 각자 알아서 해야지, 이걸 국정 과제라고 하는 것은 제 정신인 정부가 할 얘기가 아니다.

좋은 것도 있다. 예산이 얼마나 확보될지는 모르겠지만 주거 바우처는 현재의 주택 상황 변화에서 좋은 것이다. 실효성만 확보할 수 있으면 매입형 임대를 늘리겠다는 것도 괜찮다. 도심재생은 과연 이게 신도시는 포기하고 몇 년간 주춤한 뉴타운을 세게 추진하겠다는 건지, 아직은 모호하다. 어쨌든 신도시는 어렵고, 뉴타운 몇 개는 강력하게 하겠다는 게 이렇게 표현된 듯싶다. 논란이 되었던 선행학습 금지가 포함된 것은 정말로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러나 '학교내'로 단서조항을 달아 효력을 완화시킨 건 아쉽다. 출산과 관련된 여성 근무 시간에 유연성을 보장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그런 제도에 대한 기본 임금 보장이나 인센티브 같은 보조 장치가 같이 붙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들 눈이 집중된 복지나 대기업 견제 같은 분야는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보이는 농업, 해양 그리고 청년 고용 정책은 0점이다. 과학이나 에너지 분야도 핵심을 비켜간 듯하다. 이념이나 정무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인수위 보고서를 읽고 난 소감, 이 사람들 로비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여러 명 감옥 가고 끝날 것이라는 것. 시민들과의 의견교환과 논쟁이 사라진 인수위, 결국은 업자들의 로비 창구로 운영되었던 것 아닌가 의심이 간다. 그게 나의 보고서 감상 결론이다. 로비로 흥한 자, 로비로 망하리라!

우석훈 타이거픽쳐스 자문ㆍ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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