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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의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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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의 해명

입력
2013.02.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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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의 허구를 지적한 제 졸고를 읽으시고(2월 9일자 한국일보 '토요에세이') 경제학자 몇 분이 반론의 글을 보내주셨기에 해명합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허구로 보시는 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요지의 메일이었습니다.

그 해명의 첫 가닥을 영화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탈리아의 흑백영화 '길'은 언뜻 단조로운 스토리의 이야기로 그칩니다. 여자만 보면 견적필살(見敵必殺)하는 곡예사 잠파노(안소니 퀸 분)와 그한테 1만 리라에 팔려와 매일 밤 섹스도구로 전락한 보조곡예사 제르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과 사별에 관한 이야기지요.

영화는 그러나 한갓 조연급인 바이올린 악사 일 마토(리처드 베이스하트)한테 줌이 쏘이면서 엉뚱한 국면으로 바뀝니다. 특히 그가 여주인공 제르소미나한테 들려주는 "저 길모퉁이의 돌멩이 하나도 다 쓸모가 있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한 토막의 말로, 영화는 일약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화로 바뀌지요. 그 영화에 매달려온 많은 영화비평가들은 세 명의 극중 인물을 선(일 마토)과 악마(잠파노)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인간(제르소미나)으로 유형분류, 영화에 영성(靈性)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성은 요즘 화제가 된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도 그대로 재연됩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저자 빅토르 위고의 원작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성당의 은그릇을 훔쳐 도망치다 잡혀온 주인공 장발장을 내 보내며 신부가 이렇게 당부하지요. "장발장, 잊지 마시오. 성당 문은 항상 열려있다는 걸." 신부의 이 당부역시 영화 '길'에 나오는 일 마토의 발언처럼, 스토리의 기승전결과는 무관한 토막발언에 불과합니다만, 신부의 이 발언 하나로 소설 역시 고전반열에 성큼 오릅니다. 발언 속에 담긴 예의 영성 덕이지요.

은 저자가 자신을 방탕과 타락으로부터 회개시키려 세느 강에 투신자살한 젊은 딸의 넋을 기리며 쓴 소설입니다. 이 점, 영화 '길'을 만든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사연과도 상통합니다. 청년시절 유랑 서커스단에 섞여 이탈리아 전역을 방랑한 펠리니의 구도적 삶이 영화의 구석구석에 땟자국처럼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역시 제게는 영성이 담긴 표현으로 와 닿습니다. 소설과 경제는 장르가 다르다고 반론을 펴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아닙니다. 스미스가 살던 시절 경제학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은 당시 유럽역대왕조의 치세술이었던 중상주의나 중농주의에 대항해서 쓰인, 진보적 에세이에 불과했습니다.

스미스는 그런 의미에서 그 시대의 문필가나 철학가로 평가함이 온당합니다. 같은 시대를 산 나폴레옹이 소설을 남긴 것처럼, 문필가는 그 시대의 대표적 엘리트층이었지요. 또 정당을 "이념과 이해를 함께하는 단체"로 본 에드먼드 버크(1729~1797)를 후세 학자들이 자칫 정당론의 원조로만 규정하는 것과 흡사한 오판이지요. 버크야말로 전형적인 문필가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담긴 영성은 그 용어의 희소성에서도 완연합니다. '레미제라블'의 주임신부나 '길'의 일 마토처럼, 스미스가 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딱 한차례였음에도 그가 지금껏 현대경제학의 원조로 추앙받는 것 역시 그 말속에 담긴 예의 영성 덕이었던 것으로 저는 파악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 영성의 정체가 당시 영국을 지배한 전통기독교신앙의 신관(神觀)과는 전혀 다른, 비슷한 시기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처럼 이신론(理神論)자들의 신관이었다는 말씀이지요. 이신론은 신의 존재는 인정하되, 엄밀히는 무신론에 가깝습니다. 불가사의한 영역 모두를 일단 신에게 방임하는 무책임한 신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말한 허구란 아담 스미스의 학설이 아닌, 그 '손'속에 담긴 신관이었습니다.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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