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여왕' 이에리사(59)는 40년이 넘는 스포츠 외길 인생에서 좌절을 몰랐다. 현역에선 항상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성 최초의 코치, 감독 등 지도자로서도 정상을 달렸다. 행정가(태릉선수촌장)와 정치인(국회의원)으로 옷을 바꿔 입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제38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도 그는 '윗분'의 의중에 기대지 않고 가장 먼저 도전장을 던지며 포효했다. 대한체육회 93년 사상 첫 여성후보였다. 체육계 안팎에선 "만약 이에리사가 체육회장에 당선된다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못지않게 메가톤급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보수적인 체육계에서 그의 소신은 일단'유리천장'(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 막혔다.
제38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한국 유도의 '대부'김정행(70) 용인대 총장이 당선됐다.
34대와 36대 회장선거에서 고배를 들이킨 김총장은 삼수 끝에 한국 '스포츠 대통령' 야망을 달성했다.
김 총장은 이로써 2017년 2월까지 임기 4년간 한국 스포츠를 대표해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도 함께 이끌게 된다.
김 총장은 22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8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출석 대의원 54명중 과반수가 넘는 28표를 획득해 신임 체육회장으로 뽑혔다.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25표를 얻었고 무효표는 1표였다. 대의원은 모두 58명이지만 관리단체인 복싱연맹과 스키협회, 택견연맹은 투표권을 박탈당했고, 이건희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은 불참했다.
1920년 조선체육회를 모태로 한 대한체육회는 37대 박용성 회장까지 모두 31명의 회장이 배출됐지만 국가대표 출신 체육회장은 김 총장이 처음이다. 경기인 출신으론 30대 김종렬(럭비 선수)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선거는 국가대표 출신뿐만 아니라 성(性)대결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김 총장은 67년 도쿄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 유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이 의원은 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에서 구기종목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륜과 관록을 앞세운 김 총장에 이 의원은 여성 대통령에 이어 체육계도 여성 수장이 나올 때가 됐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며 여풍을 일으키는 듯 했다. 하지만 결과는 3표차로 희비가 갈렸다. 대한유도회 회장 6선과 두 차례에 걸쳐 체육회 부회장을 맡아 폭넓은 인맥을 구축한 김 총장이 '한판승'을 거뒀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반면 이 의원은 국가대표 감독과 용인대 교수, 태릉선수촌장을 역임했지만 경험과 인맥에서 밀렸다는 평가다. 그러나 '예상밖으로' 다득표에 성공해 차기 회장선거에 입지를 다졌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 총장은 이날 정견발표에서 ▦엘리트 체육 강화 ▦학교 체육 정상화 ▦생활체육과의 단계적 통합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총장은 이를 위해 "우선 재정 자립을 통해 자율성을 확보하고 체육 선진화를 위해 강력한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당선이 확정된 뒤 "한국 체육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이에리사 의원을 지지한 분들과 함께 화합하면서 체육회를 이끌어 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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