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유교문화권 국가 중에서 최초로 우리나라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였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있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가장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면서도 남성 우월주의를 신봉해왔던 우리 대한민국이 여성을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이라는 혁명적인 변화를 수용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이나 민족은 없다. 왜냐하면 변화는 그 자체가 두려움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급격한 변화를 수용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구한말 조선은 시대의 요구였던 변화를 거부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당시 중국과 일본은 서구 열강의 위협에 굴복하여 그들의 요구를 즉시 수용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선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에서 볼 수 있듯이 민과 관이 혼연일체가 되어 용감히 맞서서 서구 열강들과 싸움으로써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 결과 조선은 쇄국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은 이것을 승리로 보았지만 변화를 거부한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한 것이었다. 당시 뜻있는 조선의 젊은 고위 관료들이 아시아의 영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본을 경계하여 조선을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하였다. 그들이 추구한 개혁 개방정책은 철저하게 실패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나라의 운명 또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변화를 수용한 나라가 항상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서 세상을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은 변화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보여 왔는가. 적절한 사례가 있다.
1886년 고종이 세운 왕립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초대 교사로 조선에 와서 19년을 이 땅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호머 헐버트 박사는 조선 사람들은 변화를 과감하게 수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당시 성냥이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자 성냥의 편리함을 알게 된 조선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국적으로 고가의 수입 성냥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조선 사람들이 역동성이 있는 민족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는 이러한 역동성을 보면서 조선 사람들이 새로운 서구의 정신문명인 기독교를 반드시 받아들일 것으로 확신하였다.
놀랍게도 그의 예언처럼 오늘날 전 세계인들의 감탄과 부러움을 자아내게 하는 요인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민족이 보여준 변화에 대한 과감한 수용이다. 해방이후 우리는 오직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구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다. 서양의 모든 것이 우리의 고유한 것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
우리가 21세기에 인류문명을 이끌고 가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또다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만 하고,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틀 뒤 새롭게 출범하는 동북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시대적인 소명을 가지고 있다.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모두다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먼저 정직하고 신뢰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여성 대통령의 역사적 의미는 바로 이러한 데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윤창규 동아시아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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