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미국 대입자격시험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 문제 유출 혐의가 있는 서울 강남 일대 학원 6곳을 압수수색한 다음날인 21일 강남구 압구정동 학원가는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SAT 문제 유출 사고는 이미 수 차례 반복돼 왔지만 수사대상에 오른 강사에게 오히려 수강생이 몰리는 등 근절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서 2007년 1월 SAT 문제 유출로 시험 응시자 900명의 성적이 모조리 취소되는 소동이 있었고, 2010년에는 시차를 이용해 태국에서 시험을 치르고 미국으로 시험지를 빼돌리려던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공학계산기에 문제 입력하기, 숨겨간 칼로 시험지 도려내 갖고 나오기 등 유출 수법도 다양하다. 한 학원 관계자는 "지난해 초 괌 시험장에서는 소형 카메라를 윗옷 단추에 달고 시험지를 찍다 걸린 이도 있다"면서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유출 건이 훨씬 많고 방식도 점차 지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 유출 시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학원가에서 기출문제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큰 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SAT는 똑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나오는 문제은행 출제방식이어서 기출문제를 확보할 경우 시험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보통 여름 한철 집중되는 SAT 기출문제 강의는 수업료가 수백 만원을 호가한다. 기출문제를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강사들의 몸값이 덩달아 달라진다. SAT1(독해 수학 작문)을 가르쳤던 전직 강사는 "기출문제로 수업하는 강사들은 학생 1인당 두 달에 300만~400만원을 받고, 오피스텔 등지서 이뤄지는 개인교습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다른 SAT2(선택과목) 강사는 "최근 기출문제 12세트(12회분)를 갖고 있다고 소문을 퍼뜨린 한 강사에게 수강생들이 몰리고 있다"며 "요즘 학부모들의 문의전화 첫마디는 거의 'Real(기출) 몇 개 있냐'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출문제 확보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니 나도 시험장에서 문제를 암기해올까 고민한 적이 있다"면서 "결국 진짜 실력을 키우려는 학생이나 강사는 피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처럼 수요가 있다 보니 문제를 빼돌려 강사에게 넘기는 브로커도 창궐한다. 한 전직 SAT1 강사는 "3년 전 내게 접근한 브로커는 문제 한 세트 값으로 1,000만원을 불렀다"고 말했다.
엄중한 처벌을 하지 않는 문제 유출 수사는 오히려 강사들의 몸값만 올려주는 부작용을 낳는다. 압구정동의 한 학원 원장은 "그간 문제 유출자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인 상황에서 이번 수사가 오히려 일부 학원과 강사를 홍보하는 꼴만 되고 문제 유출은 반복될 수 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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