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가 21일 발표한 새 정부의 국정 과제에서 '경제민주화' 용어가 삭제돼 공약 후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함께 제시한 양대 핵심 공약이었다. 특히 박 당선인이 대선 이후 경제위기 상황과 맞물려 성장 등을 중시하는 발언을 해 온 점을 감안할 때 경제민주화가 새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집에는 '경제민주화'가 경제 관련 공약의 맨 앞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10월 말 선관위에 박근혜 후보의 10대 공약을 등록할 때 '경제민주화'를 첫 번째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5대 국정목표에 포함되지 않은데다 국정과제 자료집에서도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빠지고,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게다가 공약집에 나온 경제민주화의 세부 추진 계획이 국정과제에선 모호하게 표현되거나 당초 목표치가 제외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선 은행과 저축은행에 대해서만 시행되는 대주주 적격성 유지 심사를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한다는 공약은 국정과제 자료집에서 빠졌다.
대기업 총수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기로 한 공약도 국정과제에선 '형량 강화' '검찰 구형에 못 미치는 판결 선고 시 원칙적으로 항소' 등으로 모호하게 담겼다.
인수위 측은 경제민주화 용어가 빠진 데 대해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라는 표현이 경제민주화보다 더 광의의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류성걸 경제1분과 간사는 "모든 사항을 5대 국정 목표로 나열할 수 없어서 경제 파트 속에 들어갔다"며 "용어가 들어가지 않은 것과 경제민주화 의지나 실천 방향, 이행 계획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또 인수위 측은 경제민주화 용어는 빠졌지만 세부 내용은 공약보다 오히려 강화됐다고 밝혔다. 강석훈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금산분리 강화와 관련, "공약에는 단독금융회사 기준으로 5%로 돼 있는데 이번에는 전체 금융계열사를 합쳐서 5%로 강화했다"고 밝혔다. 대선 공약은 금융ㆍ보험회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을 단독 금융회사 기준으로 향후 5년 간 단계적으로 5%로 강화한다고 돼 있지만 이를 전체 금융회사 기준으로 5%까지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또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기 위한 추가 출자도 신규 순환출자로 간주해 금지하기로 했다.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을 위해 도입하기로 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경우 하도급상 부당 단가 인하, 부당한 발주 취소 등에 대해 우선 도입하면서 상한은 3배로 규정했다.
한편 경제민주화 도입에 앞장섰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선대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용어가 빠진 데 대해 "경제민주화를 뺐으면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더 이상 코멘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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