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쓸어 없애 버려야 한다. 이 말은 신앙인끼리 네 종교, 내 종파가 옳다며 적대시하고, 이교인(異敎人)이라 해서 동물처럼 취급하는 천박한 종교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뜻이다. ”
유불선에 통달했던 한국 근대불교의 최고 학승 탄허(1913~1983) 스님은 40여년 전 종교의 미래를 이렇게 일갈했다. 이 말은 ‘세속이 종교를 걱정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탄허 스님은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려면 정신 기강을 바로잡는 것밖에 없다”며 “종교야말로 썩어가는 사회를 정화하기 위한 소금이며, 도(道)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탄허 스님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24일(음력 1월 15일), 그가 주석했던 오대산 월정사는 탄신 100주년 다례재를 시작으로 다채로운 재조명 행사를 개최한다. 탄허 스님의 수행과 삶에 대한 증언집 를 비롯해 유묵과 법어, 관련 논문과 사진을 모은 책이 차례로 나온다. 특히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자 수행자인 틱낫한 스님이 5월 3~7일 월정사에서 ‘치유ㆍ행복ㆍ상생’을 주제로 명상수행학교를 진행한다.
탄허의 인재 양성과 교육 이념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는 4월 26일 서울의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한다. 탄허와 탄허의 스승 한암의 유묵 특별전시회도 4월부터 내년 2월까지 서울, 공주, 춘천의 국립박물관에서 돌아가며 열린다.
역학에도 능통했던 탄허 스님은 예지력이 뛰어났다. 월정사에서 수행하던 1949년, 개미들이 서로 싸워 법당과 사자암 뜰에 수백 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전쟁이 터질 것을 알고 상좌들과 부산으로 미리 피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월정사 한 암자에 머물던 1968년에는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 한 달 전에 이를 예감하고 장서와 번역 원고들을 강원 삼척 영은사로 옮겨 화를 면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예견하기도 했다.
종교인으로는 드물게 정치인의 자질과 역할,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스님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가 국민 의사를 묵살하고 권력 쟁취에 휘말려 싸우는 것은 귀신 혓바닥 장난보다 못한 짓”이라 했고, “지도자가 먼저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법(法)과 영(令)이 바로 서고, 나라의 기강도 잡힌다”며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고, 허물을 지적하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탄허 스님은 일찌감치 포퓰리즘과 세대 갈등 등을 경계하면서 이렇게 갈파했다. “대중이 좋아한다고 따라서 좋아하고, 대중이 싫어한다고 따라서 싫어하는 소신 없는 이는 개미보다 못하다.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이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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