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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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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위로

입력
2013.02.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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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한 바에서 돈 맥클린의 팝송 ‘빈센트’를 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을 모티브로 만든 반 고흐의 추모곡이다. 영롱하고 감미롭게 귓전을 두드리는 “스탈리 스탈리 나잇…”

높은 회전의자에 앉아 ‘빈센트’를 듣는 동안, 시선을 두고 있던 바 중앙의 청록색 당구대는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밤의 카페’에 나오는 녹색 당구대가 되었다. 그리고 탁자 앞에 둔 투명한 데킬라 한 잔은 작품에 나오는 40도가 넘는 독주, 압생트를 닮아버렸다. 나는 노래가 흐르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의 오묘한 경험 때문에 며칠 후 나는 반 고흐의 전시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을 대면하는 순간 엷은 미소가 번졌다. 압생트 그림은 그의 불운한 삶을 닮은 듯 슬퍼 보이지 않아서였다. 희석해 마실 수 있는 물병을 향해 살짝 몸을 기댄 술잔은 녹색 띤 밝은 라임 빛이었다. 압생트를 매일같이 마시면 정신력 저하, 환각경험 등 압시틴 중독증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그가 알았어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따듯한 연인처럼 놓여있었다.

1년 전 죽은 형과 같은 날짜에 태어나 형의 이름 ‘빈센트’를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는 늦은 나이에 화가로 입문해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간, 가난 속에서 창작의 갈망을 뜨겁게 키워갔다. 하지만 귀를 잘라 창녀에게 보내고, 가슴에 총을 쏘고 폐에 치명상을 입은 채 숙소로 돌아오는 등, 불운한 삶과 기행 탓에 사람들은 작품마저 광기로 해석하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반 고흐의 그림에는 유령도 없고 환영도 없고 환각도 없다. 그것은 오후 두 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이 작열하는 진실이다.” 앙토냉 아르토의 말처럼, 화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정신적 외상의 일면이 걸작을 만들었다고 속단할 수 없다. 광기였다면 그의 테크닉이 제대로 컨트롤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작업하는 동안만큼은 온전한 정신으로 집중했고 부단한 노력에 의해 그만의 방법으로 완결된 수작을 남겼다.

반 고흐의 이러한 최고작은 프랑스 남부 아를르와 파리 북쪽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끝나는 생애 마지막 약 2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토대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이번에 전시한 1886년부터 1888년 2월 중순에 이르는 파리시기다. 그가 사실주의에서 모더니스트로 변모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이 시기의 작품들을 주목해 보면, 얼마나 치열한 노력 속에 생애 마지막 빛나는 작품들이 탄생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눈여겨보면 다양한 방식과 붓질로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는 문학을 가까이 했고, 편지를 쓰면서 그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였다. 색실로 색채를 연구하기도 했고, 빛으로서의 색을 탐미했고, 서로 다른 색들을 배열함으로 병치혼합의 색채 효과를 끊임없이 찾아내었다.

렘브란트와 쿠르베 같은 뛰어난 소묘력을 바탕으로 하는 대가들의 인물화를 보기 위해 루브르를 방문한 후에는 곧바로 자기스타일의 자화상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였고, 폴 시냑과 쇠라를 만났어도 그와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점묘를 시도하였다. 일본판화를 접한 후에는 이질적인 것과 자신의 고유한 것을 결합하며 독창적인 자기세계를 만들려 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것이다”는 말처럼 그는 그림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가장 치열하게 자기의 삶을 완성하려 노력한 사람이다. 그의 정신적 질환이 후기의 걸작을 나은 것이 아니라 걸작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의 몰입으로 뜨겁게 화폭을 달구었고, 지금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다”는 그의 말처럼 처연하게 외로움과 다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희망이 싹트는 시간이 있기에 다시금 그에게 붓을 들게 했을 것이다. 그가 늦은 오후 압생트를 마시는 시간은 어쩌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색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반 고흐의 압생트가 그를 위로하여 오늘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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