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상을 외교와 분리해선 안 된다는 '외교론자'가 통상을 산업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산업론자'(인수위안 옹호론자) 보다 훨씬 더 공세적이고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피상적인 갑론을박 보다는 과거에 통상정책과 통상협상을 다루었던 실무경험에 바탕을 두고 '산업론자'의 입장을 개진하고자 한다.
외교통상부는 설립이래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러나 반세기를 넘긴 우리 통상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과거 산업통상형 조직은 통상장관회담은 물론 '수퍼301조 우선협상대상국지정 관련 포괄협상'등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협상을 수행하였다. 오늘날에 비해 통상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관련부처간의 이해대립과 영역다툼으로 근무환경이 극히 열악하여 오죽하면 통상(通商)을 통상(痛傷)이라고 자조하면서도 국익 지키기에 몸을 사리지 않은 많은 통상 관계자와 성공사례들이 사실(史實) 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대통령이 통상교섭권을 비외교부처에 위임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위헌 운운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황당하고 한심스럽다. 많은 국제협상에 참가하고 협정문에 서명하는 다른나라의 통상산업장관들과 관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민망하다.
산업통상형 조직을 지지하는 관점에서 몇가지 논거를 제시하고자한다.
첫째, 외교론자가 거론하는 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제조업 비중이 낮고 농산물과 자원의 수출 비중이 높아서 산업과 통상을 연계할 필요가 적어 외교통상형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우리의 여건은 전혀 다르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공정무역'과 '상호주의'를 표방하고 상대국 시장 개방에 집착하면서 정착된 미국의 공격적 통상조직(USTR)도 우리에게는 적절치 않다. 본래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 전략과 적극적인 산업정책에 기반하여 발전한 나라에서는 산업과 통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며 산업통상형 조직으로 운용되어 왔다.
둘째로, 통상정책과 통상협상의 불가분성이다. 통상업무는 크게 세가지 유형 즉 통상정책, 통상협상, 통상진흥으로 나뉜다. 삼위일체가 되어야하는 이 세 가지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간의 협력과 정보공유는 통상조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핵심이다. 특히 통상정책과 통상협상을 다른 부처에서 따로 맡는다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산업을 가장 잘 알고 평소 산업육성에 전념하는 부처에서 통상정책과 통상협상을 함께 다루어야 가장 효율적이다.
셋째, 산업통상조직이 국내업계의 대변자라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 그러나 공급자(기업)중심, 산업육성 위주였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산업정책은 소비, 유통, 무역, 투자, 기술, 지식재산권 광범위한 업무를 포괄하면서 일방적인 국내시장 보호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경쟁에의 효율적 대응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넷째, 외교론자의 논리중 하나는 농산물, 서비스 등 비제조업 분야의 통상이슈를 산업통상조직이 맡을 수 있느냐하는 것인데, 무역을 총괄하고 대부분의 산업을 책임지는 실물부처(산업통상조직)가 통상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면 산업을 전혀 다루지 않는 외교부처의 전문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어느조직이 통상협상을 더 잘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외교통상부처가 산업통상부처 보다 통상협상에서 우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통상전문가는 외교관의 전유물이 아님이 과거 산업통상 관료의 많은 협상 성공사례로 입증된다. '협상기술'은 소속 부처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체득되는 것이다.
주기적 인사이동, '정통외교관'의 선호, 타 부처 관료에 대한 배타적 속성 등 외교관료 조직의 오랜 관행으로 미루어 보아 외교 관료가 산업을 잘 아는 통상전문가가 되는 것 보다는 산업마인드를 가진 관료가 협상에 필요한 자질과 지식을 갖추고 통상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통상정책과 산업정책이 하나의 '통산(通産)정책'으로 수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통상형 조직으로의 개편은 시의적절하다. 우리도 독일처럼 '산업강국'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산업통상형조직을 과거 '산업사회'로의 회귀로 폄훼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한영수 경기과학기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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