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분 바람 살째기 따시(따뜻해)지믄 마, 끼(게) 잡는 배들이 항그(가득) 뜬다 아이가. 음력 이월 초하루, 일러도 정월 보름은 지나야 하는 기라. 끼맛이 제대로 들라 카믄."
대게 하면 '영덕' 두 글자가 앞에 붙는 게 이제 자연스럽지만, 대게의 본고장은 울진이다. 적어도 기록에 따르면 그렇단다. 16세기 인문지리서인 에는 자해(紫蟹)라고 표기된 대게가 평해군과 울진현의 특산품으로 나와 있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1539~1609)도 이곳으로 귀양 왔다가 대게가 많다고 해서 '해포(蟹浦)'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전해진다. 어찌됐든, 북서에서 불어오던 동해 연안의 바닷바람에 남풍이 섞이기 시작했다. 대게에 살이 오르는 계절이 온 것이다.
대게의 '대'자는 대나무의 대자다. 생긴 꼴이 대나무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몸통은 수컷 13㎝, 암컷 7㎝ 정도까지 자라지만 다리 길이는 훨씬 길쭉하다. 암컷은 포획이 금지돼 있고 수컷도 몸통이 9㎝ 이상 되는 것만 잡을 수 있도록 통발과 그물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대게는 7, 8년 이상 자란 수컷이다.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잡히는데 제철은 음력으로 따져 2월. 연중 두 차례 산란하는 암컷 대게의 두 번째 산란 기간이다. 이즈음 7번 국도 따라 경북 동해안을 달리다 보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대게 찜통이 한껏 눈과 혀를 자극한다.
"명태배가 크다 캐도 서른 한 자, 서른 두 잔데, 이 마을엔 사십 자짜리 끼 잡는 배가 있었다카이. 그때는 끼도 얼매나 컸다고. 끼 다리가 (두 팔을 벌리며)이-만했다 아이가."
대게를 언제부터 어떻게 잡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거일2리 김태성(71)씨의 기억에 따르자면, 1950년대까지 대게는 이 마을에서만 잡히던 특산품이었다. '거일'이라는 마을 이름도 '게알'에서 왔단다. 삼으로 실을 자아서 그물을 만들고, 칡을 엮어 로프를 꼬고, 참나무 껍질로 부표를 만드는 것도 이 마을만의 노하우였다고. 그러나 그런 흔적은 이제 노인들의 얘기 속에만 남아 있다. 곁의 후포항에서 큰 배가 뜨고부터 거일리에는 더 이상 배가 들어오지 않는다. 옛 문헌 속의 본고장에서 대게 맛을 보고 싶은 사람에겐 아쉬운 일이다.
대게는 수심 200~800m 되는 북태평양 바다 어디서나 잡힌다. 우리나라에선 후포항 앞바다가 제일 좋은 어장이다. 바닷속에 왕돌초로 불리는 거대한 암초가 있는데, 이 암초 부근이 대게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왕돌초의 넓이는 동서 21㎞, 남북 53㎞ 정도 된다. 사실 울진 대게든 영덕 대게든 다 여기서 산다. 울진 죽변항에서 뜬 배나 포항 구룡포항에서 뜬 배나 잡아서 싣고 가는 대게는 다 똑같은데, 팔리는 장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에 연연하지 말고 동해안 어디서든 신선한 게를 조금이라도 싼 값에 즐기는 게 현명하다. 가격은 유명세에 비례한다. 그러니까 영덕 강구항이 제일 비싸고 이곳에서 멀어질수록 싸다.
대게를 먹는 방법은 지나칠 정도로 '심플'하다. 찜통에 통째로 쪄내는 것 아니면 맑게 끓인 탕 정도다. 이구동성, 쪄서 먹는 게 제일이란다. 후포항의 왕돌회수산 대표 임효철(45)씨는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역시 찜요리만 못하다"고 했다. 이는 대게의 특징과도 연관이 있다. 대게는 열을 가할수록 살이 질겨지고 짠맛이 강해져 단순한 요리법이 알맞다. 대게찜엔 따로 양념이 없다. 대게의 살 자체가 지닌 바닷물로도 충분히 간이 맞기 때문이다. 현재 후포항을 비롯한 울진 지역에선 크기에 따라 마리 당 2만 5,000~5만원(식사 포함)에 대게를 맛볼 수 있다. 영덕에선 1만~2만원 정도 더 줘야 한다. 직접 대게를 고를 땐 손으로 눌렀을 때 단단한 것이 좋다. 물렁물렁한 것은 살 대신 물이 차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달 2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는 울진 후포항, 3월 28일부터 4월 1일까지는 영덕 강구항에서 대게 축제가 열린다. 울진대게 축제위원회 (054)787-1331, 영덕대게 축제위원회 (054) 730-6561
울진=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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