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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지원책 내놓기보다 '공정한 시장'먼저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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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지원책 내놓기보다 '공정한 시장'먼저 만들어야

입력
2013.02.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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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中企는 영원한 中企?납품 입찰 최고점 받고도 대기업 계열사에 뺏기고…매출 올려도 수수료 등 부담… 대형 유통업체만 이득…'억지 中企졸업' 피해도업종별 특성 등 고려없이 획일적 기준으로 "중견 기업"기존 지원·혜택 모두 끊어공정위 역할 확대하고 中企 졸업 조건 세분화 해야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전체 기업의 0.04%에 불과한 중견기업 비중을 높이는 일은 또 어떻게 가능할까. 중기에 박힌 '손톱 밑 가시'를 뽑아주고, 성장 단계별로 섬세하고도 통 큰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중기ㆍ중견기업인들은 '공정한 시장 조성'을 첫손에 꼽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40년 동안 중소기업으로서 다양한 지원을 받아 왔지만 대기업들에 치여 더 이상 크기 어려웠다"며 "100가지 지원책보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결과제는 '공정한 시장 조성'

실제 공정하지 못한 게임 탓에 중소기업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 적지 않다. 2000년부터 콘텐츠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600여 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B사도 '더티 플레이'의 희생자다. B사 대표는 "대기업 납품 입찰 프레젠테이션에서 수 차례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매번 해당 기업의 계열사, 관계사들이 따냈다"며 "한국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의 중소기업도 살아남기 힘든, 공정하지 못한 생태계"라고 지적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연거푸 고배를 마신 B사는 해외 시장에 진출, 글로벌 기업 500여 곳에 납품해 연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 15일 창립 48주년을 맞은 침구업체 님프만도 유통 대기업의 횡포로 지금껏 연매출 100억원 남짓한 중소기업으로 머물러 있는 기업. 서문환 사장은 "백화점에 입점할 당시 40%에 육박하던 수수료를 내던 상황에서도 세일시즌 할인율 3분의 2이상을 떠안아야 했다"며 "백화점 배만 불리고 입점 업체들은 뼈만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과감히 철수했다"고 했다. 그는 "남아 있을 경우 100억원 정도의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매출이 그렇게 올라도 수익에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며 "거래선을 바꿔 지난해부터 적정 수수료율을 제시한 해외 백화점 3곳에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 확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산하 업종별 조합 이사장들 모임인 진흥회의 한 원로는 "대기업들의 횡포는 기업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대기업들의 횡포를 늘어놓느라 술안주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라며 "공정위의 역할이 지금보다 10배가 커진다고 해도 중소기업들에겐 시원치 않을 판"이라고 말했다. 경제검찰 공정위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 힘 없고 약한 중소기업들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다.

겉만 중견기업인 중소기업들

공정한 시장 조성이 급선무이긴 하지만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지원책들도 필요하다. 정부가 중소기업들에게 160여 가지의 지원을 하고 있는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중기와 중견기업을 나누는 획일화된 기준 탓에 피해를 보는 기업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 2,000억원 매출을 올린 부산의 철강업체 H사. 이 회사 대표는 "제조업의 경우 근로자수나 매출액, 자본금 등의 규모로 중소ㆍ중견기업을 판단하는데 우리는 매출액이 2011년 1,500억원을 돌파하면서 중소기업에서 졸업했다"며 "제품의 단가가 높아 빚어진 결과일 뿐 직원은 200명 남짓한 중소기업인데 각종 지원이 끊겨 난감하다"고 했다. 중기 졸업으로 기업의 어음제도개선을 위한 세액공제와 연구ㆍ인력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축소)와 공용창출투자세액(소멸) 등 끊기게 된 3가지 혜택만 따져도 감면소득 감소액이 4억3,000만원에 이르고, 산업기능요원 사용이 불가능해지는 등 피해가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중소기업기본법은 ▦상시근로자 수 300명 미만 ▦연 매출 1,500억원 이하 등의 기업만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 중 한가지만 충족해도 지원이 끊긴다. 이 회사 재무회계 담당자는 "인형, 의류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매출은 얼마 안되지만 직원이 많아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수 천개의 업종이 '제조업'이라는 단일 카테고리로 묶이는 바람에 생기는 현상인 만큼 업종 특성별로 세분화 해서 겉만 중견기업인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수준의 규제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는 강력하되 정교하게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적지 않다. 중견기업의 중소기업 인수합병(M&A)이 단적인 예다. 지난해 제품 다양화를 위해 중소기업 T사를 인수한 경기 안산의 폴리에틸렌 필름 생산 업체 A사 관계자는 "달라진 것이라곤 주인밖에 없는데 중견기업인 우리 회사가 인수했다고 T사가 받던 그간의 혜택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며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을 인수하지 말란 이야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 쪼개기'를 통해 중소기업 졸업을 피하기 위한 꼼수 차단이라는 법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견기업이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을 했다면 기존 혜택은 당분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중견기업 간부는 "중소기업을 인수하더라도 회사 명의가 아닌 사장 개인 명의로 중소기업을 인수할 경우 인수된 중소기업의 기존 혜택은 유지된다"며 "하지만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등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회사 주머니가 아닌 사장 개인 주머니게 들어가는 만큼 경제정의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중견기업육성법(가칭) 제정 등 관련 규정 정비를 준비하고 있는 새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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