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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도 디자인이 시민감성 마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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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도 디자인이 시민감성 마비시켰다"

입력
2013.02.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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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2.55 핸드백은 손에 드는 가방에서 어깨에 메는 가방으로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디자인계의 전설적인 상품이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단지 '노세일 브랜드'란 이유로 700만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린다. 일상의 소비 패턴을 관찰해 이 과정을 단순화시키는 이노디자인 김영세의 디자인은 기능성보다 '미국에서 특허 받은 디자인'이라는 문구가 더 앞서서 한국인의 자부심처럼 선전된다. 한국인의 디자인 인식, 디자인을 보는 안목은 왜 이렇게 저급할까.

디자인평론가 최범(56)씨가 수준 이하인 한국인의 디자인 감각이 어디에서 비롯했는가를 분석한 (안그라픽스 발행)를 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디자인은 구체적 개념보다 추상적 이미지로 소비된다"며 "디자인이 매끈하고 세련된 상품 껍데기로 치부되거나 대중을 압도하는 스펙터클로 작용하는 것은 이 말이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전락하며 관조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그 원흉으로 1967년 박정희의 '미술 수출' 정책을 지목한다. "현대사회에는 디자인 주체가 국가, 기업, 시민인데 대개 기업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죠. 자본주의 소비문화에서 생산자가 주체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한데 한국은 유독 국가가 디자인 행위자로 등장해요.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 근대화 과정과 디자인이 결합돼있는 거죠."

박정희의 '미술 수출' 정책은 디자인 역시 국가의 동원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오직 수출을 염두에 두고 팔리는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래서 '미술수출'은 한국 디자인의 신화이자 유일 이념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이 겪은 식민지적 근대, 국가주의 개발이데올로기, 디자인의 도구화 등이 이 이념 속에 모두 들어 있다.

박 정권의 시작부터 따져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디자인이 국가 발전, 부의 증대, 소비 촉진에 동원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그 결정판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정책이라고 최씨는 말한다. 디자인이 정치, 경제, 전문가, 권력자와 하나로 묶이는 이런 상황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시민이다. 디자인을 자신의 삶과 연관해서 향유할 자율성을 시민이 빼앗겼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씨는 "디자인 정책을 비판할 전문가들이 '그 밑에서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작태부리는 걸 보고 경악했다"며 "시민과 사회의 이익에 서서 국가로부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의 대안은 당연하게도 시민이 디자인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다. "디자인은 삶을 조형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마을공동체 운동, 텃밭 가꾸기 등을 삶을 담은 디자인의 좋은 사례로 들었다. "디자인은 보이는 객관적 사물이 아니라 내 삶, 내 경험과 분리 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디자인이란 시민들이 디자인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시청 앞에 붙이는 플래카드가 아니라."

최씨의 바람은 조만간 하나씩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희망제작소 소장이던 시절, 그가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장이었던 인연으로 함께 서울시 디자인프로젝트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마포구 범죄예방 디자인 등의 시범 사업을 진행했고 올 상반기 중에 이 작업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그는 "사회문제 해결에 보탬 되면서 돈 들이지 않으면서 시민 삶에 침투하는 디자인 정책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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