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탓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진짜 공공의 적은 포털 사이트입니다."
A부동산정보업체는 2007년만 해도 연구소 직원이 4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3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회사를 빛낸 고수들이 속속 떠나면서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다른 업체들 상황도 비슷하다. 건설 경기가 워낙 좋지 않으니 당연할 법도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만 아니면 이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B업체 관계자는 "포털들이 직접 부동산 매물 중개에 나서면서 해마다 가맹회원(공인중개사무소)들을 뺏어가니 버틸 재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포털이라는 관문을 통하지 않고선 영업마저 쉽지 않으니 "시장질서 침해"라고 대놓고 항의할 처지도 안 된다. 이래저래 괜히 밉보이느니 차라리 이직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18일 부동산정보업계에 따르면 김규정 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난달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부동산팀장으로 옮겼다. 그는 1997년부터 여러 언론매체에 부동산 투자지침을 기고하는 등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부동산 전문가다. 부동산시장 전망이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박원갑 전 부동산1번지 부동산연구소장은 현재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난달 부동산써브에서 이직해왔다.
박원갑, 함영진, 김규정 세 사람은 2000년대 부동산 호황기부터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흔히 '부동산 3총사'로 불릴 정도로 이 바닥에선 스타 전문가로 통한다. 그 중 2명이 금융업계로 떠났고, 나머지 1명도 회사를 옮겼으니 업계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업계를 대표하던 닥터아파트의 이영호 리서치연구소장은 지난달 사임했는데, 아직 거취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1번지에서 5년간 활약했던 이미영 분양팀장 역시 부동산 홍보대행업체인 '더 피알'로 옮겼다.
현재 부동산정보업체는 1997~99년 세워진 닥터아파트, 부동산써브, 부동산1번지, 부동산114 등이 명맥을 유지하고, 2011년 리얼투데이가 새로 생긴 정도다. 군소업체들은 모두 몰락했다. 주택경기 침체로 분양광고 수입이 급감한 데다 포털들이 몇 년간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한 결과다.
포털 점유율 1위 네이버는 2006년 부동산 매물 중개사이트(네이버부동산)를 시작했다. 부동산정보업체로부터 자릿세(홈페이지 노출)를 받다가 직접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장사(건당 중개수수료)에 나선 것이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경기가 좋았고, 부동산정보업체의 인지도 또한 높았던 터라 큰 위협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부동산정보업체→포털' 구조는 서서히 깨져갔다. 설상가상 다음도 2010년부터 네이버와 비슷한 서비스에 나섰다. C정보업체 관계자는 "가맹회원 숫자가 2008년 최고를 기록한 뒤 현재 30% 이상 빠졌다"며 "정보독점권을 쥔 포털들이 싼 가격과 유리한 조건을 무기로 고객을 뺏어가고 있다"고 불평했다. 회원이 절반 이상 급감한 곳도 있다. 매년 재계약을 하는 방식이라 부동산정보업체의 고객 이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포털들이 부동산 매물 중개에 나서면서 부동산정보업체 수익의 다른 한 축인 분양광고마저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수익구조는 보통 회비와 신규 분양광고가 5대 5, 불경기 때는 7대 3의 비율이다. 포털들이 자사 서비스 알리기에 주력하면서 부동산정보업체의 위상 역시 하락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정보업체는 이런저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포털을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환경 개선이 쉽지 않아 다른 직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면 거절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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