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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안할래" 끊어진 '산업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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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안할래" 끊어진 '산업 허리'

입력
2013.02.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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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중소기업으로 살아간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경기 안산에서 LED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A전자. 2000년 공장 설립 후 제2공장까지 지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고 2007년엔 연 매출 150억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듬해 리먼사태가 터지면서 추락하기 시작, 지금은 사실상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다.

기업을 하다 보면 자금난도, 때론 부도도 겪을 수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에겐 한번 낙인이 찍히면 재기의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 이 회사 대표는 "중소기업은 신용불량이 되는 순간 모든 게 막히고 만다. 자금조달이 끊어지고 빌리더라도 사채이자에 가까운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면서 "이건 기업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땅에선 중견기업으로 살아간다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다. 열심히 기업을 키워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혜택은 사라지고 규제의 칼날이 들어온다.

B사의 지난 2007년 매출액은 380억원, 종업원 수는 249명이었다. 밤낮없이 일한 결과 글로벌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한파 속에서도 지난해 매출 700억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현재 직원 수는 255명으로 5년 전보다 6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실 이 회사는 80명 정도 더 뽑을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 졸업조건인 '상시종업원 300명'을 넘겨 중견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 동안 누리던 지원과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해외법인을 세우는 것. 해외법인직원은 상시근로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경계에 놓인 많은 기업들이 기존 혜택을 받기 위해 이런 식의 기업 쪼개기를 하고 있다"면서 "중견기업이 되는 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여겨지는 게 지금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 진입을 꺼리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중소기업이 10곳 중 3곳에 달하고, 이를 위해 ▦분사 및 계열사 신설(38.8%) ▦상시근로자 수 조정(29%) 등 인위적 구조조정 방법을 쓰고 있다.

중소기업도 괴롭고, 중견기업도 괴로운 게 지금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이 되기 싫어하고, 미래(대기업)를 꿈꿔야 할 중견기업은 과거(중소기업)만 집착하는, 사실상 기업 생태계가 와해된 상태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1년간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고작 119건에 불과하고 2008∼2010년엔 성장기업수가 380개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복원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기업엔 미래가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에 미래가 없다면, 일자리도 투자도 성장도 불가능하다. 전경련 양금승 중소기업협력센터 소장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해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선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성장 경로별로 차별화한 지원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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