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밤 9시3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프랑스 음식 전문 레스토랑.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연인들을 위한 특별 디너 메뉴를 내놓고 대목을 기대했던 이 식당에는 웃음꽃을 피우는 연인들 사이로 주인 없는 테이블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이 곳 매니저는 "오늘은 4개 테이블이'노쇼(no showㆍ자리를 예약해 놓고 취소 통고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고객)'이다" 며 "일주일 전 예약이 끝나 받지 못한 테이블이 30개가 넘었는데 속이 쓰릴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날일수록 노쇼가 날 확률이 높은데 오늘은 그나마 네 테이블로 막아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설날 연휴였던 지난 10일 밤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깃집도 사정은 비슷했다. 식당 주인 박모(61)씨는 "설날 가족모임이 있다며 10명 단체예약이 들어와 인원수대로 고기 야채 준비하고 테이블도 3개나 비워뒀는데 예약시간 다 돼서야 '못 온다'고 연락 왔다"며 "예약 다 찼다고 좋아했다가 음식도 버리고 테이블도 놀려야 하니 이중으로 손해"라고 하소연했다.
음식점들이 크리스마스이브 등 1년에 몇 안 되는 손에 꼽을 만큼 '특수'가 기대되는 날에 예약을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손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약시간이 임박해 돌연 취소하거나 전화 한 통 없이 나타나지 않는 '노쇼' 때문에 식당들로선 대목은커녕 오히려 손해가 날 지경이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음식점주들이 말하는'노쇼'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서울 강북 대학가의 한 피잣집 주인 이모(46)씨는 "예약시간에 맞춰 미리 피자를 구워달라던 손님으로부터 예약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취소 전화가 왔다"며 "헌데 수화기 너머로 다른 식당 소리가 들렸다"고 분개했다. 용산구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 관계자는 "한 커플이 식당 다섯 곳을 예약해놓고 당일 날 기분에 따라 한 곳을 택하기도 한다"며 "가장 좋은 테이블에 골라 않으려 일행 네 명이 각자의 이름으로 네 테이블을 예약한 경우도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속에선 부아가 치밀지만 "다음에 꼭 오시라"고 할 뿐 싫은 내색 한 번 못 한다고 말했다.
'노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구책을 내놓은 식당도 생겨났다. 예약 손님에게 예약금을 미리 받거나 취소에 따른 위약금을 물리는 것이다. 지난 14일 예약 손님에게 테이블당 5만원의 예약금을 받은 서초구 반포동 J 레스토랑은 당일 32개 테이블을 모두 채웠다. 용산구 후암동 P 한식당도 예약금으로 예상 식사비 30%를, 당일 취소 땐 위약금으로 50%를 받기로 하자 예약 취소율이 현격히 줄었다.
하지만 이는 단골이 확보된 일부 식당의 얘기일 뿐 대다수 식당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예약금 설명을 하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고객들이 가고 싶은 식당리스트에서 아예 지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업계 종사자는 "외국 식당은 예약 때 신용카드 번호를 받아두고 손님이 안 나타나면 식사비 일부나 전액을 결제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쇼'현상을 놓고 우리의 식당예약문화 전반을 뒤돌아봐야 한다고 진단한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예약은 일방의 통보가 아니다"며 "'꼭 가겠다'는 손님과 '자리를 비워두겠다'는 식당간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고재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텔 예약은 꼭 지키려해도 식당 예약은 쉽게 여기는 경향이 많다"며 "이는 식당 운영을 어렵게 하고 메뉴개발 의욕을 떨어뜨리는 등 외식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글ㆍ사진=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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