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을 대표하는 강남의 명소들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한 마디로 '강남은 강남'인데 스타일이 실종된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최고의 상권으로 각광받아온 압구정 로데오거리에는 한 건물 건너씩 폐업 간판이 즐비하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강남 상권의 중심축이 신사동으로 옮겨오면서 가로수길은 소규모 공방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트렌드를 형성해 새로운 강남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최근 이마저도'자본의 논리'에 밀려 그 특색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강남' 애호가들 조차"더 이상 '강남은 없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이다. 전문가들은 압구정 로데오거리나 가로수길 등의 지역특성을 최대한 살려 강남구가 보다 과감하고 주도 면밀한 맞춤형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색 잃고 손님 잃은 로데오
"금요일 밤 정도 술집을 찾는 손님이 좀 있는 편이지 주말 낮에도 압구정 로데오를 찾는 인적이 드물어요."(A 의류매장 직원)
17일 낮12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1990~2000년대 초반 국내 패션ㆍ문화트렌드의 중심이었던 사실이 무색할 만큼 인적이 드물었다. 이곳에서 13㎡(약 4평)짜리 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압구정동은 이미 죽은 동네"라며 "하루에 단 한 벌의 옷도 팔지 못하는 날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김씨는 "로데오길은 소규모 의류점이 많았던 게 특색이었고 이런 의류점을 중심으로 압구정만의 ?션문화가 꽃피었다"며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형 브랜드 점포들로 획일화 돼 가더니 로데오길을 찾는 손님들 수가 크게 줄었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건물주들도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이다. 20년째 압구정 로데오길의 5개 건물을 운영 중인 이모(67)씨는 "건물 점포의 약 20%가 폐업 이후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로데오길 상권이 죽으면서 오히려 권리금이 싸졌지만 예전처럼 임대문의를 하는 사람도 드물다"고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로데오길의 66㎡(20평)규모의 한 음식점의 경우 2000년대 초반 권리금이 1억4,000만원이었지만 최근 매출이 급감하면서 권리금 5,000만원에 임대로 나와 있는 실정이다. 임대료는 떨어졌지만 로데오길의 메인 도로를 조금 벗어나자 폐업과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은 빈 점포가 자주 눈에 띄었다.
호황 누리던 가로수길… 대기업 안테나숍 진출에 특색 잃어가
같은 시각 로데오길에서 약 2㎞떨어진 신사동 가로수길은 주말을 맞아 적잖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2000년대 중반 압구정 로데오 거리 쇠퇴와 종로 인근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이곳에 자리잡은 디자이너들의 공방이 몰려 독특한 문화 트렌드의 진원지로 각광받고있는 신사동 가로수길. 하지만 2008년 기준 가로수길가 1층 99㎡(약30평) 크기의 점포 임대료가 820만~950만원, 보증금이 2억~3억원이었던 것이, 지난해 기준 각각 2,200만~4,500만원, 5억~15억원으로 3배 이상 오르자 가로수길의 외곽 모습도 점차 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 가로수길 소규모 점포들은 급등한 월세와 권리금에 가로수길 옆 양 갈래 거리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이른바 '세로수길'이라는 새로운 상권 명칭이 생겨난 이유다.
신사동 주민 임모(28)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규모 공방들이 주류를 이뤄 주말마다 작은 장터가 열리는 등 로데오길과 강남역의 상권이 차별화되면서 유명해졌지만 최근 비싸진 땅값 탓에 대형 의류업체만 이곳에서 발을 붙이다 보니 가로수길이 갖고 있던 특색이 점점 퇴색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압구정 로데오 상인회 조성, 가로수길 디자인특구 지정 노력
강남구와 지역 상인들은 죽어가는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다시 살리고, 가로수길의 특성을 유지ㆍ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서울연구원은 17일 상인자치기구가 상권부흥을 위해 직접 축제 및 공동마케팅 등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원측은 "교통과 배후 주거공간과 사무공간이 발달한 압구정로데오의 경우 상권 사업체가 1,500개에 달해 상인들의 자치가 가능한 최적의 요건을 갖췄다"며 "상인들이 직접 나서야 상권이 부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성원 사단법인 압구정로데오 이사장은 "분당선 역 개통의 효과가 아직은 적지만 올해 압구정만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세계 문화 축제 등 문화 수요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남구 역시 가로수길의 특색을 유지ㆍ관리하기 위해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구청 관계자는 "신사동 가로수길 일대를 인테리어, 제품, 시각 전문디자인업체를 위주로 사업을 권장하는 등 디자인 개발진흥지구로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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