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바라본 일본의 위상, 일본의 실력은 위력적이다. 도널드 만줄로 전 하원 동아태 소위원장이 워싱턴의 한국계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으로 오기 전 일이다. 국내에선 그의 소장 임명을 앞두고 과거 위안부 결의안과 관련된 친일행적을 이유로 반대기류가 높았다. 그러나 재미동포 단체인 시민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이사는 "인사에 반대할 수는 있겠지만 반대의 논리는 워싱턴의 일본 실력을 모르는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식 잣대로 따져 워싱턴에 처음부터 친한파, 지한파 인사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만줄로 소장의 경우 "교포들이 그의 사무실 문턱이 닳도록 찾아 다녀 겨우 한국을 이해하는 지한파 인사로 변화시켰는데, 그의 과거 행적을 친일이라며 문제 삼는 건 워싱턴의 상황을 너무 모르는 얘기"란 것이다. 사실 워싱턴의 친한파, 지한파 정치인 또는 한반도 전문가들은 그보다 먼저 지일파, 일본전문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일본을 먼저 알고 한국을 부전공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관료들도 마찬가지여서 역대 국무부의 아시아정책 1인자인 동아태 차관보는 대부분 일본통의 자리였다. 버락 오바마 정부 1기 때 동아태 차관보를 지내고 최근 물러난 커트 캠벨은 미일동맹에 기여하고 싶어하던 민주당의 일본 전문가였고, 그의 후임자로 유력한 대니얼 러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 역시 부인이 일본인일 만큼 일본통이다. 앞서 부시 정권시절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짐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공화당의 대표적 일본통이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세계 언론이 취재 거점을 두고 있는 백악관 인근 13층 규모의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도 일본의 실력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언론으로는 최대 취재망을 갖춘 연합뉴스가 3명 밖에 취재진이 없지만 일본의 통신사 중 하나인 교도통신만 해도 11명의 취재진이 이곳에 포진해 있다. 요미우리 아사히 등 거대 언론사까지 포함하면 워싱턴 현장에서 한국 기자가 느끼는 일본 언론의 실력은 자괴감을 들게 할 정도다. 최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일본 언론에 보도된 워싱턴발 뉴스가 국내 언론에 인용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실력들이 바탕이 된 일본의 워싱턴 내 위상은 최근 들어 더 높아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주요국 정상으로는 처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워싱턴으로 초청해 22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백악관은 일본 민주당 집권 중 양국 관계의 잃어버린 10년을 아베 총리가 회복시킬 것으로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다. 또 재무부 차관은 최근 엔저를 통한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를 지지한다고 말해 세계 금융시장을 놀라게 했다. 한국의 환율시장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면서 세계 환율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일본의 엔저에는 눈을 감는 오바마 정부의 처사는 '아베 밀기'에 다름 아니다. 워싱턴의 일본 벚꽃(사쿠라)이 4월이 오기 전에 만개라도 한 듯 미일관계가 긴밀해지는 조짐은 이처럼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군사적으로는 14일 워싱턴에서 제5차 안보방위협력포럼(SDCF)을 연 것을 비롯, 미국이 일본을 아시아 3각 안보체제의 축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배가되고 있다.
워싱턴의 일본통들이 주문하는 것처럼 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전략적 비전의 소유자인 아베 총리는 이에 맞춰 강한 미일동맹을 구축, 아시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여건으로 보면 1980년대 레이건-나카소네, 2000년대 부시-고이즈미 시대에 이어 오바마-아베 시대라는 새로운 미일 밀월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간 중국의 부상, 일본의 침체, 그리고 북한의 불확실성 증가라는 세 요인에 기대어 있던 한미관계에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이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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